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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Sep 10. 2019

'나는 피해자야 웅앵웅'에 대하여

사실 피해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꺼려한다. 피해자다움을 규정하겠다는 게 아니라, 명분 없이 피해 사실을 함부로 공유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 제기다. 나서서 자기 아픈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을까? 알 수 없다. 적어도 내 경우엔,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절대 말 못한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굳이 꺼내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는 게 불편하다.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없는 일인 체 하고 살면 그만, 다들 아픈 사연은 갖고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아야지 삼킨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많은 세상에 대하여, 정말 궁금하다.


남자는 이래서 안 돼, 남자는 다 변태야, 웅앵웅. 꼰대들은 이래서 안 돼, 애들은 이래서 안 돼. 그러는 당신은? 세상 살기 팍팍한 세상서 편 가르기 하고는 나는 숭고해 웅앵웅 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나는 의문을 품는다. 궤변이 따로 없다. 한 줄 쓰면 그만인 SNS 플랫폼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전시하고 확대 재생산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 A라는 대화가 있다면 그걸 B라고 해석해 올린다. 나는 그런 왜곡에 대해 의문이 든다. 남 일이지만 제3자 입장서 참 그 사람과 엮인 이가 불쌍하다가도 또 궁금하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SNS 시대는 위험하다. 누구나 글을 올리는 것은 좋은 세상이나 때로 분별력 없는 이에게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SNS 한 계정서 생겨난 이야기나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에게 공유돼 그것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지 않고 그것을 증거로 사용할 때, 그것은 정말 위험하지 않을까.


혹자는 특정 SNS 플랫폼의 '피해자무새'에 대하여 혹평했다. 나는 그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1인이지만 그 플랫폼서 생겨난 많은 유언비어를 들은 적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 플랫폼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A 나 B들은 누구일까. 그걸 만든 이는 왜 만드는 걸까. 혹자는 그것이 관심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의문이다. 그렇게 받은 가상이 관심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가? 알 수 없다. 여전히 내게 세상이란 어렵기만 한 것이다.


이것은 대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인데, 우리는 SNS라는 자신은 숨고 타인을 공개 비판하는 무서운 플랫폼서 남 얘기만 듣고 혹자 말처럼 '피해자무새 웅앵웅'을 따라 노래하는 건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상처를 건강하게 극복하는 이들을 향한 게 아니라, 왜곡된 사실을 전시하며 허위 사실로 결론이 나도 끝까지 '피해자무새 웅앵'을 선전하는 일부 소수를 향한 것이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생긴 세상서, 사회 참여도 않으면서 그저 키보드 두드리는 걸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믿는 이들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과거에 비해 마우스 한 번 딸깍 하면 뭐든 참여하거나 판단하기 쉬워진 세상서, 사람은 더 신중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세상에서야 말로 남을 함부로 재단 내리는 것보다는 그럴 수도 있구나 또는 그래? 따위의 의문을 품는 데서 시작해보는 둥근 태도를 지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나아가, 자신이 가해라 상정한 대상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듣는 나로선 곤혹스럽다. 그저 남자는 다 나빠! 남자는 본성이 그래! 따위로 해석되는 세상은 이제 지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해도, 나는 아직도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 부들대는 것은 낭비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 이뤄야 하는 사명들이 있지 않은가? 그 사명에 직접 도움되는 일이 아닌 웅앵웅들은 방해만 되지 않을까? 나는 의문이다. 냉정하게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파악한 후 주변에 공유하길 바란다, 누구들아. 앞뒤 안 맞는 말들에 대하여 맞장구 쳐주는 건 비슷한 사람들 혹은 잠깐 곁에 있을 또래 따위일 뿐이니까.


또한, 개인이 속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공고히 하겠다는 이유로 현장에 없는 다른 성별을 비난하거나 하는 행위는 제발 누구든 하지 말아라. 지겹다. 지겹게 질려 버린 것에 대하여, 왜 대학가에서 이 움직임이 퍼지는 건지 나는 슬프다. 명확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에 힘을 모아 집중해야지, 왜 물을 흐리는가. 물을 흐리는 존재들에 대해서, 왜 누구도 나서지 않는가. 나는 그들이 뭘 하고 싶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누구들의 목소리가 거절당했다는 건 많은 이가 설득당하지 못했다는 것. 어려운 문제지만, 단순하게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문제가 있다면 문제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 그것의 해결과 처벌에 집중하는 것. 그럴 용기가 없다면, 감내하는 것. 선택의 문제며 누가 해결해줄 수 없으니 가해자가 아닌 이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지 말라. 못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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