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말 필요 없다. 지금 설왕설래 떠드는 글들을 보면 너무 착해빠진 그는 꼭 돌아와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내가 안 그럴게" 할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럴 줄 몰랐어. 미안해" 따위의 자기 탓으로 넘기며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려 할 것 같은 착해빠진 사람. 꼭 좋은 사람은 먼저 간다. 누구 말 따라, 사람은 살기 위해서 자꾸만 최선을 다해서 나빠지고, 최선을 다해서 강해진다. 억지로 꾸역꾸역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살아가니까, 착한 사람은 여기서 버티기 힘들다. 어렵다. 왜 그래야 되는데?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렇게 물을 테니까.
한 마디 말도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든 말든 내버려 두는 게 최고라는 거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고 누구도 그걸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대개 그런 훈수를 두는 인간들의 삶이 더 피폐하기 마련이며 누구 말 따라 내 눈 안의 티끌을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니 착한 사람은 고통받고 세상이 어렵고 궁금하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용감한 선택지가 하나 생기는데, 그것은 죽음이다.
극단적 선택 따위의 말에 시비를 걸고 싶다기보다는, 그런 묘한 가치판단이 들어간 단어들이, 물론 언론의 이름, 혹은 공인의 이름을 달고 꼭 남일인 것처럼 세련되어 보이게 표현하고 싶을 때 택하는 단어라는 것도, 백 번 양보해서 알겠다. 그러나 끝까지 자기 삶에 충실하게 자기 마음 따라 선택한 이를 두고 무엇이 그를 그것으로 몰았냐는둥 그는 투사였다는둥 어쩌구 저쩌구 자기 입맛 따라 떠들어대는 소리들이, 역겨운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모순적인 존재이며 가치 판단이란 것도 명확하지 않아 그저 수많은 합뢰화의 과정 위에 껍데기 하나 쓰고 있는 동물일 뿐이지만, 그래도 너무 하다. 언론에 대해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일부 매체의 위선과 그 안의 썩어빠진 시스템, 게으르고 남 눈치 보느라 정작 중요한 건 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프다. 상사에게 표현 하나 시비 걸기 애매해 순간을 게을리 살면, 그 대가는 다른 이가 직격타로 맞는다. 상사가 시대 흐름 못 읽고 엉망인 표현을 쓰면, 젊은 피라도 나서서 고쳐줘야 한다. 조직에서 쌍욕을 먹고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렇게 해서라도 표현 하나, 기사 하나들을 막아내야 한다. 쓸데없는 똥글을 싸지르는 행위들을 서로가 막아야, 불신도 없어지지 않겠나.
이런 저런 얘기 떠들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데, 하루가 너무나 소란했다. 지역 출장을 마치고 밤새워 마감을 하고 받은 아침 첫 통화서부터, 갑자기 그의 용감한 선택을 묻더니 '정신의 아픔'을 들먹이는 소리를 듣고서는 나는 그만 '일기장에라도 떠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새벽 마감을 하면서 했던 생각은, 인터넷에 댓글 따위 다는 것 너무나 부끄러운 행위라 한 번도 한 적도, 관심도 없지만, 그냥 혹시나, 그에게 응원한다고, 이런 저런 진영 논리 말고 그냥 '그로서' 오롯이 '그로서' 참 잘 살고 있다고 멋지다고 한 마디만 남겨볼 걸 하는 되먹지 않은 환상에 1초 빠지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응원해줄걸. 들을 수 있게. 그냥 멀리서 응원하지 말고 그래볼걸. 멍청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또한, 그것 또한 오만이자 욕심이자 그가 들을 리도, 듣고서 어찌 해석할 지도 모르는 것에 대하여.
정신의 아픔이란, 감기처럼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원인에서 자꾸 멀어지고 원인을 약물로 치료하면서 길게 나아질 수 있는 병. 나 또한 공황장애로 매일 시험받는 입장서, 가끔은 약을 꺼내 먹기도 하는데, 그것은 약해빠져서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니라, 소화불량이면 소화제를 먹고 발목이 저릿하면 파스를 붙이듯 잠시 인간이, 사회가 소화가 잘 안 돼, 그걸 넘기려 먹는 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먹으면 잠이 온다든가, 그나마 마음이 놓여, 그것이 평소 일할 때의 전투 태세보다는 조금 더 이완된다는 차이는 있겠지만은, 어쨌든 소화하는 과정이니까. 열이 나면 열이 내릴 때까지 기다리듯. 잠시나마 그런 것이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종교를 통해 극복한다"는둥 "우리나라 연예인들은 그런 걸 잘 이겨낼 수 있는 멘탈이 있다는둥" 헛소리를 너무나 세고 당당하게 해대는 행위는, 얼마나 가볍고도 가벼운가. 그것은 멘탈의 차이가 아닌, 환경의 차이이며 어떤 요소들이 그렇게 구성됐는지는, 알아들을 대상이 아니니 설명하다가도 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그도 아닌데, 나서서 말한다는 것은 대단한 오만이며 얼마나 가벼운 행위인가. 그러나 혼자 받은 상처는 어쩐지 내가 더 억울해서, 죽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최선의 선택에까지 언제까지나 솔직했던 것이라고. 그렇다고. 세상에 등장하면서부터 빛이 나서 미친 소리에 휩싸였고 그것을 당연하게 감내해야 할 것처럼 구성된 사회에서 혼자 곪았고 그러다 자신만의 최선의 방어책을 찾아 열심히 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 간 사람에게, 이러쿵 저러쿵 별 되먹지 못할 말을 하면서, 함부로 판단 따위, 하는 오만은 누구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역겨우니까. 누구든 미워하고 싶지 않으니, 그냥 어떠한 공허 상태를 애써 유지하며, 그저 조용히 마음 아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