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우울을 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밤을 견디면 새 아침을 맞고 그러면 다시 '그럭저럭' 살아간다. 햇살에 젖어 행복하다고 느낄 만한 기회도 몇 번 얻는다. 행복이란 저마다 이름 붙이기 마련이다. 내게 행복은 햇살에 푹 젖어 잠깐이나마 '나 쉬고 있다', '여유 좀 부려볼까' 따위의 기분을 느끼는 찰나다. 그 완벽한 찰나를 위해 평소를 살고 일하고 버틴다. 요새 느끼는 건, 살아간다는 건 자꾸만 사람을 발악하게 한다는 것. 왜 이렇게 발악하게 하니. 왜 그냥 좋은 일은 좋은대로 하면 안 되니. 편협한 사고들이 부딪혀 오해를 얻고 그냥 '그러려니'를 내재화한다. 그러면서 억지로 강해진다. 이런 저런 편견들 속에서도 '강하게', '쿨하게' 보여야 나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몸이 아파 술도 마음대로 못 마실 때는 약을 먹는다. 일주일에 두어 번 '정 못 견딜 때' 꺼내 먹는다. 스케쥴이 밀려 있으면 먹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이제 조금은 긴장을 늦춰도 되겠어' 하고는 내 다른 자아가 말하면, 안심하고 약을 꺼내 먹는다. 몸이 긴장으로 얼룩져서, 지나치게 경직되어서,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흥분 상태일 때는, 약을 먹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약을 먹으면, 주중 긴장으로 점철돼 좀처럼 이루지 못한 잠을, 토요일 하루. 12시간을 넘게 꼬박 잔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그제야,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온다. 내 곁의 물건들. 내가 만들어낸 서울 집, 그 안을 구성하는 내 이불, 내 보금자리, 내 빨래들, 내 기록들. 하나씩 보듬으면서 억지로 행복을 쥐어짜낸다.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을 고군분투하면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 이렇게 곁에 무엇들이 남았잖은가. 형체 있는 무언가들이 가득 둘러싸고는, 나를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끼니는 잘 챙기지 않는다. 밥이란 건 대개 먹고 나면 우울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더부룩한 속은 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운동을 다녀온들, 그것과 그것의 정신적 허기는 별개여서, 그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단정한 상태가 좋다. 그렇게 순간을 숨죽여 살다가, 다시 일을 하러 나간다. 무척이나 긴장돼 있다가 돌아오면 다시 숨죽인다. 그러다가 순간을 불안해 한다.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걸까. 일생을 잠식한 그 불안은, 좀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다.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이제는 뭔가를 억지로 해내는 것도 두려운데, 그것은 대개 그것의 결말이 어디로 갈지 안다는 것 때문이다. 그게 착각인지 현실인지 염세인지 이제는 알 길이 없다. 좀처럼 들지 않던 그 생각들에 무엇을 함부로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다가도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데, 그것이 나를 좀먹고 있는 것인지 나아가게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순간의 불안을 없애는 작은 행위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가도 또 알겠다는 것이다.
극한의 우울이 찾아오면, 그 순간을 넘기면 또 살 만해진다고.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다고들 한다. 인생이란 원래 고민의 연속이여서 '끝, 행복해졌습니다. 짠' 하는 순간은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서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해야할 것들'과, 인생을 인간으로서 영위해나가기 위해 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또 생각하다가, 지쳐버리다가. 살아야 해서 하는 일들이 만든 함정들에 빠져 또 허우젹대다가. 훗날 그게 함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는 기뻐하다가. 또 다시 내가 나를 힘든 시험에 몰아 넣었다가. 또 다른 자아는 그게 실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해 거기에 또 끌려 가다가. 그냥 그렇게 저렇게 혼란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