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멀미를 한다

by 팔로 쓰는 앎Arm

오랜만에 과거의 명함들을 정리했다. 하나 하나 들여본 게 아니니 정리라는 말이 맞는지는 미지수다. 그저 하나의 주머니 속 명함들, 카드들을 꺼냈다. 다른 주머니를 꺼내 들어 거기에 넣었다. 언젠가 다른 주머니 속 명함, 카드를 한 데 모아 넣었다는 기억이 있는 곳에 넣었다. 그 안의 카드, 명함들이 보였다. 하나하나 슥슥 넘기며 훑었다. 미소가 흘러나왔다. 줄곧 맴돌던 동네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자의로 맴돈 동네 아닌, 타의로 맴돈 동네지만, 어쩐 일인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꽤나 이 동네에서 보냈다. 수년이 흘렀더라.


또 다른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의 카드, 명함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 하나 정리했다. 과거엔 왜 들여볼 생각을 안 했을까. 그건 두려움이었다. 달리는 길을 되돌아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지금의 나는 이거 한 번 본다고 해서 달리는 길에 멈추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훑어볼 용기는 가졌다. 달리는 길에서 슬픈 기억이 떠올라 우울해질까봐, 그 기억이 덮칠까봐 무서워 보지 못했던 걸, 지금은 그저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 하나 훑다보면 지나온 카페, 거리, 덕수궁, 산책길, 자주 가던 상점, 서점들의 카드들이 가득했다.


비교적 최근의 카드 또한 먼 일처럼 아련했다. 주소를 보고는 불과 작년에 갔던 곳이란 걸 알고, 그 때의 기억을 또 떠올렸다. 상세하지는 못했다. 그저 이 카드를 받고 주소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 어디에 선 나일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회사 근처 길에 선 채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여러 기록을 훑다가 다른 주머니 하나를 또 열었다. 그 안에는 누군가가 열심히 만들었을 글귀가 인쇄된 종이 따위의 것이 있었다. 나는 참 귀엽다고 그것을 바라봤다. 언제, 누가 쓴지는 모를 그 글에서, 나는 갑자기 멀미를 느꼈다.


언제부터였을까. 모 일간지 인턴 시절, 나는 생각을 가진 1인이 되지 않는 것을 강요받았다. 나 역시 울면서 힘들어 했지만 순응했다.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응당 그래야만 기자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온갖 욕, 화받이 역할을 했더랬다. 그 때 우리는 울면서 덕수궁을 돌고는 다시 들어와 침울한 채 취재를 하고 글을 썼다. "왜 이리 칙칙한 옷을 입었냐"는 말에 다같이 화사한 옷을 입었다가 '얕아 얕아" 따위의 말에 다시 또 세상이 흔들렸던 어린 시절. 그 때 무얼 알았겠느냐만은, 이제는 그런 말 들으면 미친놈아 하고 무시하면 된다는 걸 아니까.


근데 상흔이란 건 참 웃겨서 내 안에 굵은 스크래치 따위를 낸 모양이다. 나는 사람의 주관이 무서운 인간이 되었다. 사람의 불분명함에서 참 아름다운 것들이 나온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몸은 멀미를 하는 인간이 되었다. 내 머리와 가슴이 사람의 생각, 다양한 인간의 목소리를 사랑한다고 외치는데도 내 몸은 그런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두통과 멀미를 동반하는 인간이 되었다. "감히 그래도 돼?" "감히?" 따위의 메아리가 반사적으로 몸을 감싼다. 그래서 나는, 모 일간지 인턴 시절이 내게 참 강한 근육을 길러준 시절이라고 회상하면서도, 내 안에 생겨버린 병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근원이 그 곳이라는 걸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떠한 인간인가. 인간은 나아가고 싶은 길,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어떠한 것을 희생하는가. 나는 공황장애에 걸렸고,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며,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숨 쉬기 힘들어 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람 속에 사는 일인데, 그 일 속에서 나는 매일을 아무렇지 않은 체 웃고 밝게 열심히 연기하지만, 내가 가장 돌봐야 하는 존재인 나에 대해서는 어찌 하고 있는가 따위의 생각이 다시 내게 오는 것이다. 그럼 나는 답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 어른이 사는 길이라고. 자기 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에 대하여, 내가 구태여 생각하며 상처를 받거나 생득적으로 달리 태어난 성별 따위의 조건에 내가 얽매여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근래 이슈가 그러해서인지 모르겠으나, 후배들로부터 적잖이 질문을 받는 것은 바로 성별 이슈다. 여기자여서 힘든 것은 없으세요, 여기자여서 당한 부당한 일은 없으세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깎아 내리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모른 척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있으나 없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짓지 말라는 거예요. 뭐만 하면 거기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멍청한 일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어떠한 상처들을 입었다고 해서, 인간이 거기에만 얽매여 자신의 창창한 미래를 갉아 먹는다면 그 또한 너무나 슬픈 일 아닌가. 그러니 나는 그냥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볼 뿐이다. 앞을 바라본다는 것은, 언젠가는 굉장히 멋지고 희망찬 말이었다면, 지금의 내게는 뭐랄까. 가장 쿨한 말이다. 그건 꽤나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당한 일, 상처를 하나 하나 나열하면 끝도 없으며 그를 내가 어디서 말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매사에 진정성 없이 입으로만 진보를 외치는 현실 모순 분자들에게 멀미를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생과 기사가 같으라고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되어버린 작태가 나는 구역질 나는 것이다. 입으로는 앞을 외치며 곁과 주변은 나 몰라라 하는 이른바 '입진보' 이기주의자들에 대하여 나는 그저 멀미가 나는 것이다. 아픈 자는 아픈 자가 대변할 수 있고 아프지 않았던 자는 아픔에 동일시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천은 않고 공허한 동태 눈깔을 뜨고서는 입으로만 외치는 이른바 '좋은 것들'에 대하여 나는 구역질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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