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든

by 팔로 쓰는 앎Arm

# scene.01


내가 이 일을 계속 하는 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언젠간 글만 쓰며 살겠다는 마음, 책을 쓰며 살겠다는 마음의 발현이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며 치유받는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다. 좋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들과의 만남을 잊지 못해서다. 그 좋았던 기억 하나로, 나는 이 일을 이어 나간다. 그 첫기억, 첫만남 등의 기억들 덕분이다.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히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떠날 생각이 있대도 그것은 그 첫기억, 첫만남, 이어진 과정에서 습득한, 이 일의 연장선이리라.


# scene.02


'사람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 대답은 늘 '아니올시다'였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진심을 다할 수 있을까' 역시 'NO'였다. '일에 방해가 된다'면 난 언제나 그를 떠날 수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어도, 내게 소중한 가치는 나, 일이다. 일은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먹여 살리지 그 누구도 챙기지 않는다. 내가 바로 서야 주변도 행복하다. 그것이 1인분의 삶을 잘 영위해 내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서야 드는 생각은, 나도 마침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도 괜찮을, 혹은 믿어도 괜찮을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닐까 하는 신중한 호기심이다. 잔잔하고 '뜨끈'하게 오래도록 그를 사랑하고 싶다. 하루종일 울려대는 폰, 처리해야 할 일들에 정신없는 나를, 그는 그냥 묵묵히 바라봐 준다. 기다리고 기다려 준다. 그런 사람, 나는 처음이다. '왜 내가 우선이지 않느냐'는 칭얼거림, '일을 왜 그리 좋아하냐'는 비아냥, '~ 하니 내가 ~로 보이냐'는 열폭 따위 없는 잔잔한 사람. '내 꿈은 너야' 하고 말해주면서 행동도 일치해 주는 사람, 나는 처음이니까. 그래서 나는, 어리석게 믿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 scene.03


인간과 인간의 지속되는 관계를 배웠다. A 선배는 귀엽다. 툴툴대고 모두를 욕하지만 안다. 그게 A가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A는 그 옛날 고전 속 통통한 모습의 귀여운 수다쟁이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욕하고 이야하는 '귀여운 호사가'지만, 그 기반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귀여운 욕망이 숨어있다는 걸 안다. 그간 나는 '아니다' 싶으면 '가지치듯' 잘 잘라내는 인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A 선배를 통해 나는 어떠한 형태의 '지속적인 인간관계'의 다양한 형태를 배우고 있다. 오랜 기간 누군가와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거나 갈등을 여러 번 겪고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지지고 볶은'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경험, 나는 인생에서 처음이다. 잔잔하게 오래된 지인들은 있어도, 이런 형태의 사귐은 처음이라, A 선배가 싫지만 좋다. 인간사를 배우게 해줬다는 점에서 좋다.


# scene.04


어느 날 여자는 울었다. 쏟아지는 일들을 정신없이 해내던 날들 중 하루의 밤이었다. 가만히,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마땅히 일을 해내는 게 더 즐겁고 좋은 여자였다. 그 자아가 85%라면 15%의 자아는 가끔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오는데, 그 땐 바다를 봐줘야 한다. 수영을 하거나. 마땅히 그러한데, 코로나19로 바다, 수영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황에 처한 여자는, 해소할 곳이 없었다. 긴장의 연속 중에 15%의 자아가 한 밤 침대에서 끙끙대고 울어 버렸다. 그렇게 잠깐 "으앙 하기 싫어" 한마디 하던 자아는 10초간 눈물을 또르르 흘리더니 금세 쏙 들어갔다. 마치 '이만하면 되었다'는듯. '충분히 해소했어' 하고 85%의 자아에게 '열심히 해라' 하고 독려하더니 금세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이 긴장감, 탄성, 어떠한 형태의 탄력 따위의 것에 스스로 기뻐하다가 금세 또 날이 밝으니 충천한 에너지로 하루를 뛰어 다닌다. 그러고는 잠을 못 잔다. 그게 여자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 scene.05


여자는 햇살을 사랑한다. 밤을 사랑하던 여자는 언젠가부터 쨍쨍한 해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아침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해를 보며 뿌듯한 순간들이 모여 여자가 해를 사랑하게 만들었을 거다. 여자는 사랑하는 해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을 생각하고 사랑할지 모를 그를 생각한다. 가장 사랑하는 1인분의 공간도 바라본다. 사랑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충만한 기분을 느끼는 여자는, 금세 에너지를 담아 하루를 누빈다. '쉬고 싶다'고 15%의 자아가 가끔 얘기해도, 여자는 안다. 85%의 자아가 잘 다독여 탄력 있게 뛰어다닐 거라는 걸 말이다. '왜 그리 정신없어', '숨 좀 돌려' 얘기 들어도 여자는 안다. 여자가 숨 돌리는 방식은 이것뿐이다. 가만히 있는 여자는 깊이 침잠해 죽어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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