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마라탕과 전통차

by 팔로 쓰는 앎Arm

그 사람은 내게 밥을 사준다. 음료를 사준다. 어깨를 내어준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잔잔하게 곁을 지켜주니 사랑하지 않고는 어떻게 배기랴. 일상에 물 스며들듯 자꾸 다가오는 이 사람을 나는 잔잔하게 사랑하고 있다. 때론 서운하고 섭섭해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지만, 그러다 곧 끝내는 사람이라 사랑한다. 생각이 다르면 다르다고 인정하고 마는 사람이라서 사랑한다. 강요하거나 내가 맞다 등의 이상한 자존심을 세우는 남자가 아니라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내 삶의 낙은 마라탕, 전통차 두 가지다. 몇 달째 푹 빠져 있는 사랑하는 대상들. 거기에 전주, 경주 등을 사랑하는 '그런 기운 러버'로서 최근엔 코로나19로 가지 못하기에 인사동을 그리 자주 간다. 인사동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가득하다. 회사에서 조금 여유 있게 걸으면 도달한다. 거리도 만족스럽고 심리적 여유마저 생긴다. 생활터전 근처니까. 거리에 들어서면 현실과는 단절돼 꿈을 꾸는 듯하다. 거리엔 목소리 좋은 키 작은 버스커도 한 명 있다. 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서양 여행객으로 추정되는 분도 있다. 혹은 정착민이겠지. 거의 비슷한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기타를 울리는 노인도 있다. 밤이 되면 음악을 틀고 그에 맞춰 바이올린을 켜는 버스커들도 있다. 이 낭만적인 천국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하늘도 개안하듯 맑다. 키 큰 나무들과 그에 어우러진 전통식 간판, 어딜 가나 맛좋은 음식과 전통차가 기다린다는 여유, 게다가 옆을 보면 당신이 있다는 사실. 그 모든 건 나를 꿈 아닌 현실에 살게 한다.


당신을 만난 이후로 어쩐지 내 야망이 조금은 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말다 한다.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딘 채 매일을 산다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19 여파도 있겠으나 어쨌든 일상을 반복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우리들은 기어이 답을 찾아내고 만다. 내겐 운명처럼 당신이 일상에 들어와 주어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나를 오롯이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내 삶을 지지해 주는 당신의 그 모습, 그게 변할까 두려워 그 전에 끝내고 싶은 이기적인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충동, 쉽게 무찔러 주는 당신의 말과 행동은, 내게 이 사람은 뭘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어떤 말보다 일관된 당신의 행동이 내게 안정감을 준다. 당신과 거니는 인사동, 삼청동, 소격동 그 거리들은 내게 단 꿈과 같다. 햇살이 가득 내리는 그 거리에서 마스크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흠뻑 마시자면, 나는 그만 머리가 아득해지고 만다. 행복에 젖어서 나는 웃다가 침착해지다가 한다.


마라탕에 빠진 건 적당한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식으로 개조된 음식보다는 현지의 진한 향이 나는 음식을 상대적으로 즐기는 편이다. 심심한 한식도 매력있지만 현지식을 먹을 땐 생선간장을 있는 그대로 즐기거나 향을 있는 그대로 부어 먹는 등 어쨌든 '그들의 맛'도 즐기려 하는 편. 마라탕을 먹을 땐 그런 욕구가 충족된다. 온 동네 마라탕을 다 먹어본 요즘에는 A와 B 집이 내 머리에 가장 맛있는 집으로 선택됐다. 관련해 나머지 집은 어디인지 등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이들 집에서 내가 마라탕을 즐기는 이유는 이것. 적당한 야채, 두부, 건강해 보이는 재료를 맛좋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적당히 심심하지 않은 향에 고수 등을 가득 넣어 즐기는 음식은 입 안에 풍미를 가득하게 만들어 즐겁다. 꿔바로우도 필수다. 꿔바로우 잘하는 집이 마라탕도 잘한다. 꿔바로우 맛있는 집, 많지 않다.


전통차에 빠진 건, 일상의 스위치를 꺼주기 때문이다. 전통찻집에 들어서면 느끼는 그 고요하고 느린 향, 분위기. 바닥을 울리는 건 하이힐 소리가 아닌, 나무의 고요한 울림. 의자에 앉아 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한과, 오랜 시간 구워야 하는 떡, 조심히 다뤄 마실 수 있는 차도구와 그 내용물 등을 즐기다 보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어떤 차를 마실지 고심한 후 그 효능을 알아보고 때론 모른 채 먹어본 후 맞추는 놀이 따위를 해보고. 때론 그저 믿어보고. 꽃가루에 뜨거운 물을 채워 한 번 비워내며 인생을 배우고. 그 물을 다시 주전자에 부워 데워내며 또 인생을 배우고. 이후 기다림 끝에 향긋하고 진한 차를 마시고. 그 모든 과정이 따뜻하고 애틋하여 나는 그저 기쁨에 취하는 것이다. 그 달각거림과 모든 향긋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나 생겼으니 어찌 매일이 따숩지 않겠느냐. 정신없고 힘든 일은 여전히 도처에 기다리며 스마트폰의 끝없는 울림에 지치지만 그래도 그 끝엔 이런 달콤함이 가끔은 있다는 것. 이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달콤하며 기쁜 기운이 가득한 곳 아니겠느냐. 하여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디고 하루를 영위해 내고 있는 나는, 잠시나마 현실의 고민 따위 없는 것처럼, 나를 기다리는 과업들 따위 잠시나마 없는 것처럼, 그렇게 일주일을 달려 하루만이라도 그런 것처럼, 나를 속이고, 현실을 속이고, 그리 나를 충전하며 오늘을, 내일을 또 살아보는 것이다. 이 모든 건 당신이 내 곁에 있으니 새로 생긴 사랑할 거리들. 당신 손을 잡으면, 평소 속으로 사랑해마지 않던 것들을 마침내 용기내어 온 몸으로 사랑한다 외쳐볼 용기가 생긴다. 내 두 발로 땅 위에 서서는, 홀로 버티려 애쓰는 것에서 나아가, 사랑하는 것들을 감히 사랑한다 말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니까. 지금으로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