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진실이란 없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이 두 문장은 일견 현실도피성 발언들로 보인다. 그러나 어른의 세계란 그런 걸까.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다. 한 가지 사안에는 분명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어도 각자의 논리와 제3자들의 입맛대로 요리된다. 사안을 정확하게 보고 해결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혹자는 이를 군중심리, 마녀사냥이라고 몰아간다. 다른 자는 그를 보며 사안을 호도하는 자라고 손가락질한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자극적으로 표현하거나 사안 자체가 문제시되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 그 때 저 두 문장은 큰 매력을 뽐낸다. 완벽한 진실이란 없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이 두 문장은 마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오용되는 것처럼, 면죄부 따위 받을 자격 없어 보이는 이에게 면죄부를 쉽게 쥐어준다. 적당히 모른 체하고 싶은 제3자들에게도 안전한 회색지대를 선사한다.
어른의 세계란 그런 걸까.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인기를 얻는 것은 누구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치졸한 인간 군상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 아닐까.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그 세상에선 적당한 권선징악이 오간다. 일견 나빠 보이는 이를 피해자는 줄곧 받아주고 피해자의 적당한 분노는 제3자들에게 '독해 보인다'거나 '예민하다' 등으로 호도된다. 이 프레임이 생경하지 않은 건 일상에 분명 존재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튀어 보이거나 잘나보이면 어떻게는 헐뜯는다. 신기할 정도로 남에게 관심이 많으며 재단해 제단에 올리려 하는 이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 드라마는 무한한 설득력을 얻는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해' 하는 일들은, 드라마서 극화돼 표현되었겠지만, 그 일면들을 가진 이들을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 만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거나 피하고 싶어한다.
전래동화 속 이리 붙고 저리 붙는 박쥐 같은 캐릭터를 욕하면서 한 편으로는 '처세술'이라며 그런 태도도 배워둬야 살아남는다는 걸 '꿀팁'이라고 공유하는 세상이다. 이 문장은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 있지'로 뭐든 치환하면 세상이 단순해진다. 그런 단순한 세상에서 다면적인 인간들 중 특히 그런 면을 뒤로 '뽐내는' 인간들은 어디에 있든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은 남의 이야기를 즐기고 남과의 친해지는 자리서 제3자를 제단에 올려 결속력을 얻으려 한다. 평등 이슈, 기본권 이슈 등이 정치나 세상 사는 이야기로 들어가 오염돼 또 혹자들의 편집을 거친 이야기로 뉴스거리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선과 악이 있으며 어릴 적 믿던 '그 가치'가 살아 움직일 거라 생각했던 어린 영혼은 사회에서 손쉽게 배반당한다. 그러니 적당히 둔해지고 적당히 귀를 막거나 눈을 감는다. '어떻게 그래' 하던 행동은 '인간이 그렇지', '자고나서 생각해 보자' 따위로 치환된다. 그런 인간들이 가득한 동네는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뭐가 맞고 틀린 건 없다. 인간은 복잡하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단칼에 재단되지 않는다. 옳고그름조차 의심하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에서 무슨 이야기가 소용있으랴. 비관적으로 적는 게 아니다. 세상사가 그렇다는 거다. 뭐든 절대적 진리는 없고 완벽한 진실은 없다는 그 이론들, 수많은 방관자적 시선 속에서 피해를 입거나 관련 사실에 얽힌 개인만 힘들어진다는 시선은 꽤나 설득력을 얻는다. '그럴 만했겠지' 등으로 낙인을 찍고 누군가의 피해, 상처를 입방아 삼아 찧는 인간 군상은, 슬프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할테니. 쀼의 세계를 보며 그냥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별 수 있나. 세상을 구성하는 톱니바퀴 1인으로서의 역할이나 묵묵히 수행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찾고 기쁨을 찾으며 평화롭게 사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그것조차 대단한 성취며 결실이고 행복의 상징이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얻기 힘든 삶의 가치일 테니까. 평온이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