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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ug 04. 2020

버텨라, 버티자, 어떻게든, 아무튼

모든 걸 다 놓고 싶어지자 손에 들고 있는 걸 들여다볼 시간이 왔다. 근래의 나는 주절거렸다. 가까운 사람 하나를 만나면 주절댔다. 종알종알 중얼중얼대다가 어쩐지 민망해져 웃었다. 절제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모든 순간이 불편하고 지나치게 객관화됐으며 그래서 더 속이 시끄러웠다. 속이 시끄럽지 않으면 이렇게 안일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속이 시끄러우면 아무 일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직도 나는 나에게 엄격했다. 엄격하고 또 엄격해서 나를 코너로 몰고는 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어찌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나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객관화했으며 무섭게 몰아붙였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습관이 되었을뿐이라는 걸 자각한 후부터는 좀 그러지 말자고 제안하는데, 그 제안이 최근에 시작되어서, 내가 나를 그렇게 몰아붙인다는 걸 이제야 다른 자아가 알아채고 그러지 말라고 제안하기 시작해서, 내 속은 그렇게 자꾸만 시끄러웠다.


하고싶은 게 무어냐고 물으면 명확하다. 나는 그간 가정적인 환경 탓에 하고싶은 걸 뒤로 뒤로 뒤로 미뤄왔다.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게 A라면 가성비, 돈이 안 드는 A'를 선택해 왔다. 그러니 매일같이 고민하고, 어쩌다 하고 싶던 것과 비슷한 걸 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일견 그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게 아니라는 걸 혼자 알아서, 나는 고통스럽다. 자꾸만 두통이 찾아오는 건,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해도, 여유가 생기면 자꾸만 안달복달하는 건, 그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습성, 어떻게든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 그리하여 미래의 내가 더 행복해야 한다는 것, 내게 어떤 선택지든 많이 줘야 한다는 것, 본질적으로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재능과 이 감, 능력 등이 살아있을 때 어떻게든 더 잘 써내야 한다는 그 의무감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의무감에게 늘 고마워하면서도 매순간 고통스러워 한다. 그만 좀 하면 안 돼? 묻다가, 그만하면 뭐할 건데? 안정감을 찾아서 뭐할 건데? 묻는다. 습관화된 게 아니니, 그저 불안해서 뭐든 해내는 편을 택한다. 그게 마음이 백 번 편해서. 그게 또 고통을 불러온다는 건, 그저 내가 선택했으니 감내해야 할 몫이다.


멀쩡히 자기 밥벌이 하는 사람은 다 편하지 않다. 그러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가 말하는 건, 자기 능력대로 살아온 사람에게 한정한다. 집에 돈이 있어서 어떻게든 일궈낸 것들 말고, 그냥 말그대로 자기 재능수저 물고 자기 성능껏 살아가는 사람들, 힘껏 사는 사람들. 어딘가에 존재할 그들을 상상하고 때론 멀리서 보면서 나는 힘을 얻는다. 늘 생각해 왔다. 내게 주어진 좋지 않았던 환경들은 나를 담금질했을 뿐이라고. 그러니 그 담금질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나는 오늘도 버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렇게나 고민하는 것이다. 노오력 비꼬는 요즘이지만, 나는 어쨌든 노오력은 그 다음의 선택을 마련하는 성실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노오력을 잃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의 '유도리' 같은 건 여기서 말할 것 아니고, 어쨌든 누구나 자기가 하려는 일에 다가가려면, 노오력은 필수조건이다. 뭐, 금수저 다이아수저 얘기할 거면 얘기 안 되니까 제발 좀. 언젠가 선배 A가, 어떻게 살아도 결국 계층이동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그런 얘기 딴나라 얘기라고 굳게 믿던 내가, 그러니까, 믿는다고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냥 당연히 노오력=계층 이동 가능이라고 믿던 내가, 그 얘기에 일견 수긍할 뻔한 이후로 나는, 더욱 고삐를 조여맸다. 경계심을 조여맸다. 사회를 타고 느슨해지는 마음을 내버려두면, 고립되고 도태된다. 쓸데없이 강직해보여도, 마음 안에서는 그 날 것의 느낌을 버리고 싶지 않다.


노오력 다음은 버티는 일이다. 버티는 일도 능력이라고, 아닐 것 같으면 아니라고 버리는 것도 능력인데, 어쨌든 그게 아니라서 선택을 했다면, 버티다가, 새로운 '깜'이 나타나면 다시 전력을 다하고 그러는 거다.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감내해야 하고 뭐든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그런지, 현실에서조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냥 듣고 흘린다. '술자리 가자는 상사에게 못 간다고 말하는데 왜 못해' '내 주변엔 좀 다 해서' '난 할 말은 하는 주의라서' 같은 센 척하는 말 혹은 앞뒤없는 말은 현명하게 듣고 넘길 필요가 있다. 뭐든 선택의 기준은 나, 당신이 되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이성적으로 잘 버텨 어떤 자리에 간 당신이라면, 그 자리에서 최적화된 판단과 해야할 일 등은 당신이 제일 잘 안다. 허울뿐인 대화들과 만남들이 질리지만 어쨌든 나가서 만나기는 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고, 오늘을 버텨야 하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세상에 공짜 없다. 버텨라. 어떤 방식이든, 어디서든, 어디를 가든, 꿈의 손을 놓지 말자고, 오늘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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