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
나는 늘 죽고 싶다. 이 말의 전제엔 자의성, 무고통성, 스스로 결정할 권리 등이 깔려 있다. 고통없이 죽고 싶다. 언제든 누군가 죽음의 문을 열어 준다면 들어가겠다는 건 지칠 때 하는 달콤한 상상이다. 거의 늘 지쳐 있으니 늘 한다. 누군가 와서 제안한다면 난 그 문을 기꺼이 열고 들어가리라. 열려 있다면 기꺼이 걸어가리라. 나는 늘 죽고 싶었다. 당장 죽기엔 겁이 많아서 뒤로 미뤘을뿐 나는 늘 죽고 싶다. 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늘 죽고 싶었다.
요즘엔 누가 와서 '지금 이 문을 통과하면 죽을 수 있습니다' 하는 상상을 한다. 시도때도 없이 한다. 누구랑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한다. 유일한 탈출구는 그 곳 말곤 없어 보여서 말이다.
학생 땐 '나는 늘 괴로워하면서도 열심히 하고 그것을 힘들어하리라'는 걸 알았다. 벗어날 수 없을 굴레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죽고 싶었다. 죽는 날까지 벗어던질 수 없는 굴레니 하루빨리 죽어서 굴레를 벗고 싶었다. 산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고통스러웠다.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는 순간들이 있고 실제 나아지고 있지만 나는 늘 죽고 싶다. 어린시절의 그림자는 그렇게 무겁다. 자꾸 어린시절 얘기하는데, 성장해서도 그렇다. 나는 기자를 하기로 한 내 자신을 저주한다. 그렇다고 다른 걸 하고 싶지도 않으니 그저 죽고 싶다.
나는 겉모습을 보고 입맛대로 떠드는 인간들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세게 보고 세게 나오는 인간들에게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뭐 별 값진 일을 한다고 기자 일을 하면서 변해가는 이들을 보고는 그러려니 한다. 부당하게 빼앗기고도 전전긍긍하는 선배를 보고 그러려니 한다. 멍청한 데스크들을 보고는 그러려니 한다. 맞서 싸우던 과거를 생각하고 그러려니 한다. 그러려니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일을 할 수 없다. 세상은 사람이 만드는 곳이고 사람 사이엔 수준 차가 크다. 그 수준 차나 환경 차 등을 그러려니 할 수 없다면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죽고 싶다. 사는 건 고통이니 죽고 싶다. 행복한 순간들도 있지만 그 짧은 달콤함을 위해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나는 이제 무겁다. 기자 일을 꿈꾸고 하면서 했던 것들은, 몰입이 높았던 것과 감사한 재능의 덕분일뿐, 그것 또한 거대한 질서 앞에선 별 것 아니다. 그저 소모품에 불과한 걸 아니 더 이상 기자도 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운전대를 손에 잡고 정신차리고 살려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니 죽고 싶다.
나는 긍정적인 인간이다. 성적인 피해, 후려침, 겉모습만 보고 끼워맞추는 인간들 등을 보면서도 나는 긍정적인 소수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누군들 안 그러겠나 하면서 많은 것을 흘려 들으려고 노력했다. 쓸데없는 것들에 부들거리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이 업계에선 그렇게 부들거리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는 걸 알고 나니 나는 이 업계가 혐오스럽다.
오랜만에 통화를 한 동기 A는 괴물이 돼 있었다. 전화만 울리면 예민해지는 건 우리 모두 그렇다. 나는 전화를 없애고 카메라 하나 들고 다니며 노트에 끄적이는 삶을 꿈꾼다. 카톡이 울릴 때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서는,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한다. 어린 나이에 기자가 됐다는 것은, 너희의 화를 받아줄 만만한 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걸 모르는 인간이 너무 많아서 때론 짖어야 하는데, 나는 짖기 싫다. 그러니 이 일이 싫다. 착한 사람으로 남는 건 어려운 일인 듯해서 이 일이 싫다.
최선을 다해 나빠지고 독해져야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멀쩡히 돌아가는 걸 왜 조져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조지고 조져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그건 데스크 이상의 일이지 왜 일선기자의 몫이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나이브하고 순진하게 들리는 말이라면 미안하지만 이 나이엔 순진해야 한다. 순진할 수 있을 때 순진해야지. 도대체 왜 일찍부터 썩어야 하는가.
나는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다. 나는 살고 싶지도 않다. 기쁨이 없다. 그냥 산다. 별 일 없이 사는 게 가장 좋은 걸 아니까 그냥 산다. 그냥 살면서 그냥 산다. 현상 유지만 해도 벅찬 일이 되어버린 현실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가 옳은 길인지 가치 혼란이 와서 견디기 힘들다. 그냥 산다. 그냥 돌 굴러가듯,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아득한 상태로 그냥 산다. 그러면서 가치관을 흐리는 일은 하기 싫어서는 그냥 '꿈뻑' 죽고만 싶다.
나는 단순한 인간이다. 좋은 데스크, 좋은 환경이 있다는 걸 알고 평범한 남기자였다면 누릴 수 있었을 것들에 대해 알고 있으니, 나는 그저 긍정적으로 견딘다. 견디는 의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없다. 그 예전의 누가 말했듯 그냥 산다. 그냥 하고 살고 하고 살고 그런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 그냥 하고 살고 하고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