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문화 중 싫어하는 것 하나는 '아프다' 유세다. 몸이 아프다고 혼자 일기에 쓰거나 친한 사이에서 걱정 어린 말들로 공유하는 근황 토크 얘기가 아니다. 후배 A가 아프다는 말에 대뜸 본인이 더 아프다고 쏘아붙이던 선배나 '아프다'는 후배 하나의 말에 뒤에서 '씹어대던' 선배들은 괴물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뭐 큰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기자들의 우선순위가 허황된 부분이 있다보니 다들 '아프다'는 걸 무슨 훈장처럼 여기고 씹어대며 자신만이 가질 특권인양 군다.
형편없는 문화고 창피한 이야기들이지만 참 우스운 부분 중 하나라 기록한다. 선배 B가 아프다는 말에 그 위의 선배 C는 자기가 더 아프다고 소리를 쳤다. 그 모습이 참 인상깊었는데 또 다른 선배들도 별다를 게 없었다. 휴일에 일하거나 당직이라는 것, 아프다는 것 등은 사실 요즘같은 시대에 기자가 아니더라도 다들 많이 하는 것이다. 뭐 집에서 노는 사람이랑 비교할 거면 일하지 말아야지. 그런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힘을 나누고 서로를 북돋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아파', '내가 더 많이 해'를 이상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은 일도 별로 못했다.
이상한 피해의식을에 대해서 나는 이 업계가 싫어지는 것이다. 정작 나서야 할 땐 뒤로 물러서 있다가 한 마디 질문을 못하고 약자를 되레 누르며 밖에서 정의로운 것처럼 떠벌리고 제일 구린 뒤를 숨기고 있는 이 업계의 태세에 대해, 인간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하는 수밖에는 달리 환기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안타까운 것도 사치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그냥 어찌해야 할 바를 잘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결단내리지 않고 있는 지금에 대해 고민할 뿐이다.
아닌 건 아닌 거고 썩은 건 빨리 잘라내야 한다. 인간이 살아가다 보면 많은 썩은 나무 등을 만나는데 모르고 안착했더라도 얼른 잘라내야 같이 안 썩는다. 그나마 든든한 두 발, 젊음이 있을 때 그 선택도 쉽다. 그걸 아는 사람은 매순간 알을 깨는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알을 깬다는 건 스스로를 외로운 벽에 때론 몰아넣고는 힘들게 하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고통스럽다면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면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들이 만들어가는 세심한 삶의 방향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순간 게을리 살지 않으려 한다. 그게 날 괴롭히지만 그 감, 날, 실행력이 살아있을 때 뭐든 해두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