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 기사를 얼마나 달리 쓰는지, 얼마나 예리한지, 달리 쓴 결과는 어떤지 훑어만 봐도 안다. 이 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지독하게 견제하고 꼬투리를 잡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생각보다 사안을 그대로 못 보는 사람이 많다. A가 B를 얘기하면 C가 되는 게 사회생활이라고들 하지 않나. 사람 많은 동네는 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은 그리 다 악하지 않다. 서로 관심 없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때 욕심이 개입된 사람이 생기면 문제가 생긴다. 피해자가 생기고 가해자가 생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개 이 때 그런가보다 하면 일은 커지는 경우가 많아서 적절히 반응을 보여야 한다. 면밀하게 고려할 게 너무 많으니 회사생활하면서 다들 그렇게 아픈 거겠지.
얼마 전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 돈도 못 벌고 명예도 없는 오늘날 기자의 위상에 대해, 대체 이 일을 왜 하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어설픈' 완장질과 편가르기에 누구보다 익숙한 업계라는 주절거림도 있었다. 일견 사실이라 고개를 주억거리고 웃고 말았다. 동기 A는 "내가 쓴 글이냐"고 자조했고 몇몇도 "내가 쓴 줄 알았다"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왜 기자가 되었을까. 감히 필요한 곳에서 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어디로 갔나.
'네가 뭔데' 귀가 되느냐는 말은 어린 여기자에게 유독 자주 꽂힌다. 남녀 차별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저런 견제를 하는 사람은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많다. 그러니 사람의 특성이 그러한 것이라고 이해해야지 괜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특정인을 대상화할 필요는 없다. 그저 적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며 차분하게 오늘을 정리하려는 목적이다.
많은 선배와 부장을 만나면서 이들을 유형화할 수 있다. 실력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다. 실력있는 사람은 큰그림을 그리고 움직인다. 자잘한데 연연하는 것의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다. 때론 자신과 동일하게 꼬투리 하나 하나 잡아 쓰길 바라는 사람도 있고 때론 큰그림을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는 사람이 있다. 둘째는 실력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꼬투리에 연연하는데 야마도 제대로 잡을 줄 몰라 젊은 후배들이 물어온 감각있는 아이템을 그대로 넘겨 버리며 주어목적어술어 외엔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나마도 본인의 기사를 생각하지 않고 기죽이는데 집중한 것이라 이런 사람에게 걸리면 빨리 탈출하는 수밖엔 없다.
더러워도 참아야 하는 게 사회생활이다. 어쩔 수 없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선이 자신이 정한 어떠한 기준 등을 흔들리게 만든다면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건 없다. 이 말의 전제는 노오력노오력하면서 자신의 길에 선 이등를 대상으로 한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실력이 중요하다. 실력이 없는 이들은 나이로 상대 기를 누르려 오만 노력을 하는데, 이들은 가진 것이 그것뿐인지 놀랍게도 크게 집착한다. 선택지는 두 개다. 같이 짖든지 피하든지. 내 경우 더러운 똥은 피하자는 주의다. 인생 길고 사람 많다. 낭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