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Nov 17. 2020

N년차 기자가 인생을 사는 법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스스로를 멀리서 보기'하며 살기

필자는 기자다. 기자로 몇 년 일했다. 불만은 이렇다. 젊은 여자라 깔보는 것, 깔보는 주체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능력을 보여줘도 젊은 여자라 마이너스된다는 것. 하지만 이들은 때론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 외에도 모두 감사할 거리다. 일이 있다는 것, 하루를 산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 손으로 일군 공간이 있다는 것, 공부할 것들이 많고 그걸 할 수 있다는 것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가장 좋은 건 이거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것. 언제든지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모든 게 좋은 것투성이다. 때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울기보다 웃음만 나올 때도 있다. 끝도 없는 일거리와 인생이 좋아하는 '뒤통수치기'에 웃퍼도 그냥 감사하다. 모든 건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구절 '될 일도 말하면 안 돼'를 신봉하지만 이번 감정 표현은 그런 맥락은 아니다. 그냥 감사하다는 것. 감사와 긍정과 사랑이 사라질까 두려워 늘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두지만 늘 그 기운들이 내 곁에 있다는 걸 아니까 그냥 일기에 쓰는 거다. 잊지 말라고. 잊지 말자고.


필자는 성평등 어쩌구 하는 가치를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물 밑에서 진지하게 정말 고쳐질 수 있게 노력하는 사람만 믿는다. 일이 어쩌구저쩌구 떠드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진중한 사람을 믿는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무슨 말이냐면, 이러쿵저러쿵 입으로 방정 떨로 일하는 체하고 '입진보' 떠는 사람들이 빈수레 요란하다는 속담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오래 버틴 공으로 그런 가벼운 입놀림도 그냥 묻어지곤 했다. 필자는 늘 궁금했다. 우리 모두에겐 양심이 있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 않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은 제자리 깔고 앉아 툴툴대기 바빴고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사람에겐 왜 밝냐고 손가락질했다. 성과가 좋으면 왜 혼자 일하는 척하냐, 얘만 예뻐한다 등의 말이 따라왔다. 별 피곤한 상황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말도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가치없어 보이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하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그마저도 버텼다. 한 마리 학처럼 그저 우아하게, 군말없이 성과를 냈다. 그건 다 내게 돌아온다고 믿어서다. 그냥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이제 내가 쓰고 싶은 왕관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무게를 견뎌야 한다면 내 장비도 돌보며 한번 숨을 골라볼까 했다. 인생은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늘 그랬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쁨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감사하고 감사하며 그 기운들을 저장하려 애를 썼다. 감사하게도 누가 나를 돌봐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혹은 내가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대로 가고 있다 혹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일이 많았다. 늘 슬픔과 힘든 일이 많았지만 반면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좋은 일도 많았다. 인간은 다 가질 순 없다. 나는 힘들 때면 항상 그 말을 곱씹었다. 나를 담금질한 시련에게 감사하며 그저 버텼다. 최근의 나는 약간의 회의감에 지쳐 있었다. 혹자는 번아웃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닥치는대로 일을 해나갔다. 그것만이 내가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데서 감사를 얻었다. 때론 감사를 느낄 틈이 없었다. 그러면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실은 생각하기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감사한다는 걸 알고 날 떠날까봐 늘 두려웠다. 내게 얼마 없는 그것들은 너무나 소중해서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미칠 듯한 느낌, 사랑하는 일과 사람, 모든 게 그렇다.


하지만 과하면 뭐든 체한다. 나는 그러면서도 사랑을 숨기고 애써 담백하고 무덤덤하게 일상을 지내왔다. 지금 그냥 일기를 다독이는 건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다. 잘하고 있고 잘해왔고 애썼고 장하다고. 그 말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으면 그뿐이다. 언제나 잊지 말 것은 내가 나를 간수해야 하고 그 과정은 언제나 기뻐야 하며 늘 감사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객관적으로 더 힘든 환경이 있긴 하지만 인간은 다 저마다 고충이 있다. 나는 그냥 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이 재능을 주셔서 그저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러면 됐다. 장하다. 그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흐르지 않는 고인물은 악취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