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로 소문나서 일이 몰리거나 인터뷰 요청이 자꾸 들어왔다. 수치적 증명에서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때이른 (나이 부문에서, 사회 통념상) 책임 증가와 승진 등으로 적이 늘었을 때 나는 늘 되새겼다. '재능의 대가다. 이게 낫다.' 재수없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어린 시절부터 꽤 오래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선배 A는 "네 겉만 봐서는 누가 '네가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겠냐. 편하게 다 가졌다고 생각하겠지" 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선배 A가 좋았다. 선배는 마냥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불만투성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었다. 선배는 나더러 매일 말했다. "일 많이 하지마. 너한테 안 좋아." 선배의 말은 일견 사실이었다. 어쨌든 큰 조직이고 보수적인 언론사에서 혼자 일을 많이 하면 나에게 몰리는 것은 물론이고 별 소문이 따라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안 들으면 됐다. 내겐 실제 육체적으로 가해진 해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그까짓 소문 같은 건 그냥 '모자란 것들' 하고 넘기면 됐다. 여담으로, 해서 나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Thank you, next'를 좋아한다. '응 그거 아니야~ 날 강하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 자, 다음은 뭐니?' 느낌으로.
나는 늘 머리와 손이 빨라 많은 걸 빨리 처리했다. 내 스스로는 단 한 번도 그리 느낀 적이 없는데, 평가가 그랬다. 실제 수치를 봐도 그랬으니, 이제야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걸 안 셈이다. 남들도 다 그 정도 하는 줄 알았따.
일적으로 사람 만나는 걸 비교적 좋아하며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았다. 설득하는 일은 어려울 때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어렵지 않았다. 유대감을 잘 만든다는 평가를 들어왔으니 그게 사실이겠지 한다. 덕분에 일하는 속도는 더 빨랐다. 결과도 좋았다. 그러니 단기간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걸 해냈다. 이는 상급자의 시선이나 좋은 선배들, 동기들의 눈에는 좋아 보였으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저게 뭔데 승진하느냐'라고 묻거나 '쟤가 하는 것 다 우리도 할 수 있는데' 하는 툴툴거림이 따라왔다. 실제로 하지 못하면서 해대는 툴툴거림에 대해 나는 늘 쿨하게 웃어 넘겼다. 못 들은 체하기도 했다. 민망한 순간들이 많았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하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기 일쑤였다. 달래고 어르는데 시간이 더 들었다. 결국은 그냥 내가 모든 걸 안고 하는 게 편했다. 몇 시간이고 일만 하는 일상들이었다. 그게 차라리 더 빨랐고 결과도 좋았다. 팀원을 안고 가며 피드백 해주되 결국은 내가 모든 걸 했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큰다고 생각했으니.
나는 그냥 언젠가부터, 아마 어린 시절부터인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대신 그 대가도 치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더 많이 가진 사람도 있겠지. 그런 거랑 비교할 순 없다. 나는 내가 천성적으로 갖고 있는 재능과 노력해 얻은 것들을 말하는 거다. 뭐 속세적인 돈이나 이런 걸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없기도 하고. 나는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과 발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늘 선택을 감행해 왔다. 언제나 재능에는 대가가 따른다. 내가 잠 못 이루거나 일중독에 빠져있는 일 등은 그런 부차적인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협잡질에 얽혔던 것들도.
이제 나는 늘 그랬듯이 담대하게 다시 한 번 앞으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 버틸 힘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아직 목 말라서 다행이며 안목이 살아있어 또 다행이다. 모든 것은 재능의 대가다. 가졌으면 대가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담대하고 고요하게 예전처럼 나아가자. 모든 것은 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