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 자아는 누구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날들이 지나가고 내 마음은 처참하게 찢겼다가 금세 봉합되었다가 하는 따위의 것을 반복하였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겼다가도 금세 사랑과 희망으로 차올랐다. 모든 건 환경 탓과 덕이다. (물론 이제 둘을 혼용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쓴다.) 환경 탓에 마음이 찢겼다가도 다른 환경에 마음이 금세 봉합되니 이 우스운 조화를 어찌하나 싶어 홀로 키득거리기도 한다. 인간이란 참 단순해서, 개도 저를 미워하면 알 것인데, 끝도 없는 억측에 마음이 찢기다가도 이유없이 받는 사랑과 지지에 다시 마음이 희망으로 차오른다. 삶은 계속되리라는 희망은 후자에서도 온다. 전자의 시간에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꺽꺽대다가도, 주인없는 사랑에 금세 감동한다. 얕디 얕은 인간이여.
왜 이렇게 인생이 고통스럽기만 한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걸 알기에 감내한다. 그저 감내할 뿐이다. 매번 이겨냈고, 이겨낸 덕분에(덕분에!) 이렇게나 힘들고, 이겨낸 덕분에 다시 힘들다가도, 그렇게 꾸역꾸역 마른 걸레 쥐어짜듯 살아가다가도, 나 홀로 만든 가짜 장점을 여기저기 갖다 대며 누군가의 멜로 눈깔처럼, 일상에 그런 긍정 눈깔을 씌워 바라본다. 그 지독한 감사와 긍정 탓에 이렇게나 힘든 일이 많이 벌어지는 걸까 싶다가도 그냥 입을 다문다. 조용히 침잠하면 된다. 늘 그렇듯이, 그저 고독하게 침잠하면 된다. 다 지나간다.
인간은 환경을 이기기도 하지만, 꽤 많은 경우 환경에 진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다. 왜 너는 지지 않냐고 같이 지자고, 그 옛날 S의 모 회장님이 남의 발목은 잡지 말라고 했다지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다. 신세계 아닌 별세계다. 정말 별세계라서 이를 어찌하나 싶다가도 그저 조용히 다문다. 구설수. 지겨운 구설수. 하지 않은 행동도 만들어져 소문이 나는 것. 이골이 났다. 망상하는 이들에겐 그대로 돌아갈 것이니, 나는 세상이 대신 갚아준다는 것을 믿기에 그저 참는다.
당장 돌아오라는 선배가 있어서, 당장 ㅇㅇ로 오라는 능력자들이 있어서, 홀로 참아도 괜찮다고 해주는 선배가 있어서, 굳건할 것을 안다는 후배가 있어서, 그냥 지인들이 있어서. 그래서 견디는 요즘이다. 마음이 찢기는 고통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지우게 해주는 예쁜 날씨가 있어서, 이유없이 애정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엉망인 마음을 채워주는 이유없는 친절들이 있어서. 만들어진 이야기의 함정에 빠져도 그걸 알아채는 눈치가 있어서. 그래서 견디는 요즘이다. 그저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나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말이란 건, 알아들을 만한 사람에게 하는 거니까.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절망적이지만,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럴까 하는 마음에 기쁘기도 하다. 그저 버티며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 날아올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