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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May 22. 2024

완벽한 타인

일기에 남기고 싶지 않은 무색무취의 날들이 이어졌다. 마음이 찢기면 또 꿰맬 새도 없이 찢길 일이 생겼다. 마음은 계속 갈기 갈기 찢겼다. 마구 마구 밟혀 더 모멸감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 그렇게 아팠다. 잔인한 4월과 5월이었다. 이따금씩 행복했지만, 햇살과 자연 없이는 힘들었다. 높고 높은 하늘을 마구마구 삼키듯 바라보아야만 했다. 미친듯이 걸어다녀야 했다. 그래야만 좀 나아지다가도, 또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을 때는 우습기도했다. 이럴 만한 가치가 있었나? 이성은 그렇다고 답하고, 또 다른 한 켠에선 눈물이나 흘리라고 말했다. 사람들 속 괜찮은 척하고 마냥 밝다가도 밤이 오면 다시 슬퍼했다.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을 부르다가, 이제는 낮에도 마구 불러댔다. 누구, 누구, 누구, 누구, 누구,... 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다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한 장 한 장을 충만하게 설레게 만들어주었던 이들이 생각났다. 꿈으로 설레게 해줬던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무치게 그립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망가졌다. 이 시기를 지나면 다음 단계로 갈 것이라 확신하지만, 전에 없던 내가 될 것 같다. 요즘의 나는 낯설었다. 모멸감, 선택의 자유 갈취, 온갖 루머, 그야말로 구설수 덩어리에 그 어떤 것도 대응할 힘이 없었다. 나열하자면 길어지고 쓰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황당하고 가치없고 더럽기 때문에 일기장에 옮기고 싶지도 않다. 지나치게 모멸감이 들면 하늘을 바라보았다. 높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친절한 행인들이 다가오면 웃으면서 기분을 바꿨다. 다정하게 말을 거는 완벽한 타인들이 없었다면 나는 당장이고 시간을 돌렸으리라. 돈이 없어 그럴 수 없으면서도 그렇게 감행했으리라. 단 하나. 견딜 만한 그 단 하나가 완벽한 타인이라니. 선배는 말했다. 그렇데 가둬두니 너무 슬프잖아. 너무 작은 기쁨 아니니. 너무 작잖아 그건..... 작고 작은 기쁨. 완벽한 타인들의 평가에 기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것 말고는 이 모멸감을 견딜 길이 없다.


그냥 버티는 것. 난 그것만큼 가치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힘을 뺀다는 건 멍청하게 당하고 있으란 의미가 아닐 테다. 힘을 빼면 더 큰 힘이 생긴다. 난 이 말의 힘을 믿는다. 다만 전략이 필요할뿐. 그냥 버티다 세월만 정통으로 맞고 능력없이 연차만 쌓여 멍청해져 후배들을 가스라이팅하는 최악의 누구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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