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하나에 책임과 물건 하나에 부담과

by 팔로 쓰는 앎Arm

이 곳의 패션은 자유롭다. 헐고 닳아빠진 옷들을 제 멋으로 소화해내며 입는 이들을 보면 옷과 혼연일체가 돼 보인다. 그게 멋이다. 닳아빠진 옷을 입고도 말끔해 보일 수 있는 것. 닳은 아이템 하나 둘을 두고 다른 옷을 '맛있게' 소화하는 것. 그게 이 곳의 표준인 것으로 보인다. 그게 좋다. 각자의 멋이 당연한 것. 물론 이 곳에도 규칙은 있다. 그러나 벗어나도 제 마음이다. 그 경도가 그리 세지 않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 비슷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다른 점을 사랑한다. 물건을 사지 않기 위해 꽤나 조심하고 있다. 물건 하나에 따르는 책임을 생각한다. 들이는 순간, 관리가 따라온다. 빨래부터 건조까지. 그리고 평소 보관까지. 빨래가 참 쉬운 한국에선 하지 않던 생각들을 여기선 하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빨래 한 번 하려면 엄청난 일이다. 잘 모르던 초기엔 하루 네 번이나 빨래방을 다녀가곤 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다. 말이 네 번이지, 그 짐을 들고 층계를 오가고, 2000여보를 걸어 빨래방까지 간다는 건, 그냥 해본 사람만 알리라 생각한다.


물건과의 연을 생각한다. 어느새 연식이 오래된 물건들이 있다. 생각보다 빨리 닳아 없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물건들도 있다. 내가 알 수 있을 만큼만 갖고 있자. 그렇게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이사를 자주 하면 짐이 쌓이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정말이다. 물론 그와 나의 성향이 그런 걸 거라는 걸 안다. 불필요한 것들은 기부하거나 보내준다. 추억이랍시고 들고 있지 않는다. 언젠가 어린 시절에 받은 상들의 줄을 다 빼버린 것에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6살 때부터 모았던 영화 티켓들이 가득한 박스를 한 순간에 버려버린 기억이 난다. 터를 옮기며 들고 올 수 없어 보내준 물건들이 생각난다. 그런 기억들 끝에, 필요한 것만 남긴다. 그게 편하다. 필요한 것은 지니고 있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면 보내주는 게 맞다.


빈티지 숍이 발달한 이 곳에서 사람들을 생각한다. 멀쩡하고 값비싼 물건들이 그대로 도는 선순환을 생각한다. 물자의 나라. 자본의 나라. 이 곳이라 가능한 걸 거라고 한 켠에 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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