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팔로 쓰는 앎Arm Jan 6. 2025
일기를 쓸 자리를 잡겠다고 유명대 근처를 해맸다. 자초지종이란 이렇다. 몇 주 전부터 고맙게도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동성 룸메 덕분에 일요일 아침에 약속들이 생긴 터였다. 정말 우연처럼 자꾸 마주치는 그 룸메와 여기저기 다니게 됐다. 뭐 많이는 아니고, 두어 번. 오늘도 그렇게 혼자 아닌 둘이 돼 이른 아침의 ㅇㅇㅇ을 걸었다. 밤이 되면 광기 (반짝이는 전광판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로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가 아침엔 한산하다. 설레는 사람들 속에서 설레지 않는 척 걸었다. 늘 오가는 길인데 새롭게 보이곤 한다. 선배와 차타고 지나던 길, 홀로 수십 아니 수백번은 더 지났을 길이다. 아름다운 나의 도시. 사랑하는 도시. 광기를 사랑해마지 않는다.
그렇게 오전 일정을 마치고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주다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 덕분에! 존경하는 선배는 나를 만날 때마다 덕분에! 덕분에!를 외쳤다. 아주 의식적으로, '덕'과 '탓'을 구분하는 나는 아주 의식적으로 '덕분에!'를 외치는 선배가 좋았다. 그 말을 꼭 해야 한다는 선배의 일념을 느끼곤 했다. '덕분에!' 나도 '덕분에!' 룸메의 약속 가는 길을 따라 전철을 탔다가 두 역 먼저 내렸다. 아주 우연하게도, 불과 이틀 전에 나는 이 곳의 유명대에 진학하고 싶어 투어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야속하게도 진학 시기는 지났지만, 다음도 있는 걸. 투어 사이트와 전화는 먹통이었고, 이어지던 시위와 연관이 있을까 하고 말았던 참이었다. 덕분에! 그 학교 앞에 홀로 내렸다.
학교의 모든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겼고, 학생증이 있는 이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잠길 것이란다. 다른 직원에게 물으니 그래도 20일 뒤엔 열릴 수 있다니 기다려보겠다. 아무튼 이 곳에서도 나를 고맙게도 현지인으로 아는 많은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아름다운 사진을 건져주는 의지의 한국인) 근처의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정말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건 당연하고 입 안에 피 맛이 났다. 아이들은 날아가겠다 싶을 정도였다. 이 곳의 추위는 늘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좋다. 더 입으면 되지 뭐. 아무튼, 그래서 걸어갔더니 입장 시간이 아니라고 해서 가던 길에 가려고 했던 블루보틀로 다시 돌아갔다. 가던 길에 분명 한산해 저 안에 들어가서 글을 도닥이리라 마음먹었던 나는, 다시 가보니 사람으로 가득 한 그 공간에서 결국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재빠르게 나와 다른 카페를 찾았다. 스타벅스니 조카페니 말론카페니(스타벅스 뒤의 카페 이름들은 내 멋대로 좀 바꿨다. 신비주의다.) 하는 곳들은 다 문을 닫거나 학교 안에 있는 곳들이라 갈 수 없었기에 그냥 나오겠거니 하며 정처없이 또 걸었다. 걷는 걸 사랑하는 내게 이렇게나 아름다운 건물들 사이를 거닐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다만 좀 추웠다. 많이 추웠나보다. 정말 몸이 뒤로 붕붕 밀리기를 반복하다 힘겹게 찾아낸 아늑한 카페에 들어서니 입 안에 피 맛이 가득 찼다. 그렇다. 입술뿐 아니라 입 안까지 얼었던 것이다. 재밌는 경험이다. 언제나 친절한 이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또 한 번 낯선 이들과 새해 복, 하루 안녕을 빌어주고 자리에 앉아 마침내 일기장을 도닥인다. 감사한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카페의 낯선 이들의 도란거리는 소리, 아름다운 음악, 친절한 사람들. 그게 당연한 사람들. 이 곳을 너무나 사랑한다. 내게 여러 길이 열려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이 곳에 있을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 사랑하는 날들이다. 사랑해서 눈물나는 (실제론 안 운다. 오해 말라.)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