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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꽃밭

by 팔로 쓰는 앎Arm

부지런하게 삽질을 해보기로 했다. 다시 결심한다. 삽질을 지속하다 지치는 한이 있더라도 나가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었다. 종일 서류를 처리하고 짐을 싸고 풀고 보내줄 옷들을 보내주고 그러다가도 삽질을 멈춰선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가진 것을 숨기는 게 미덕인양 살던 내게 지난 연말 덤보에서 ㅇㅇ는 "넌 네가 원하는 걸 더 크고 명확하게 말해야 돼." 단호하게 말했다. 겸손에 미덕인양 구는 게 정답인 사회도 있지만, 이 곳은 아니다. 그리고 아마 점점 더 아니게 될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겸손병에 걸린 나는 여전히 눈치를 보며 젊은 여성 혹은 남성에게 허락된 그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을 지킬 테지만, 크고 명확하게 말은 해보리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같은 조건을 가진 이들은 대개 말을 않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보여주고 궤적이 보여주리라 생각하는 사회의 정해지진 않았지만, 분명히 있는 그 '선'을 따르기 때문인데, 그 규칙,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지. 당분간 단숨에 버려보자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한다. ㅇㅇ 파크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앉아있던 기억이다. 대뜸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자던 한 인플루언서 이야기다. 그 젊은 소녀는 나를 20대 초반으로 보고 '이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려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속칭 '들이대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떠났다. 저기요, 안 물어봤는데요. 할 틈 없이. 분명 그는 20대 중반임에 틀림없는데, 미디어 업계서 이제 막 3년차가 됐다고 했다. 난 이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나는데,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와서 썰을 푼다. 뭐, 눈짓이나 몸짓으로 신호한 적 없다. 그냥 멍때리고 앉아있거나 내 일하고 있어도 일어나는 일이다. 웃기지만 이게 바로 내가 기자직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기도 하다.) 애니웨이, 만나는데-로 돌아와서-이들이 자기 얘기를 할 때 그냥 들어주는 편이다. 굳이 내가 '사실은 그게 아니고 몇 년차고 어쩌구' 하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일단 피곤하고, 그들이 정해둔 20대 초반룰ㅋ을 깰 경우 상당히 놀라자빠지는 경우를 몇 번 보았기 때문에 그 공기의 흐름 전환이 상당히 귀찮다.


경찰 취재를 가면 늘 말을 거는 타인종 아주머니는 내게 이제 학교를 갈 때가 되지 않았냐며 경찰대학에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너무 재밌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고위급들 앞에 가서 내가 학교에 가야 한다고 떠드는데 난 정말 웃겼다. 안 간다고 해도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그들만의 역할놀이에 그냥 붙들려 다닌다.


내가 이 회사를 떠났다는 걸 알게 된 모 변태 아저씨가 또 연락이 와서 보자고 한다. 해외 나오면 한국인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끼마을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자신들이 하는 짓이 변태짓인 걸 모른다. 어찌 보면 한국이 더 기본권 인식이 발달된 것 같다. 내가 말하는 한국은 서울이다. 다른 지역은 몰라서 확언할 수 없다. 애니웨이, 쿠션어 모르는 양반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 피곤하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렵네요. 차후 적당한 시간을 보겠습니다." "어려울 것 같네요." "고민해보겠습니다." 대개 이 정도면 거절로 알아듣던 한국의 지성인들이 그리운 시간이 이 곳에서 셀 수 없이 많았다. 좋은 사람이라는 단단한 자아를 그저 뿌리뽑아내려는 더러운 치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더러운 치들이라고 생각하며 안 떠나면 그게 뭔가? 그래서 떠난다. 정답을 모르면 모를까, 알면서도 왜 고민하나. 참 다행이다. 답을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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