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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 함부로 굴리지 마세요

스윗한 나의 도시

by 팔로 쓰는 앎Arm

책을 읽다 뻑뻑한 눈알을 굴렸다. 눈에 힘을 주고 부릅 뜨고 있는데 왼쪽 대각선 좌석에서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생부터 하하 유니버스에 사는 나는 (내 지인들은 내가 일기장에 이런 소리하는 걸 모른다. 그저 누가 뭐라든 시크한줄 앎-난 시크해보이는 게 싫다. 손해가 막심하다-일기는 영원히 익명일 것이다. 하하) 뭐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 언제나 그렇듯 모른 체한다. 그 때, 일행중 한 명이 다가와 묻는다. "너 도움 필요해? 내가 데려다 줄까?" 트라우마 어쩌구 하는 책을 읽다가 (트라우마 없다. 그냥 신규 도서 중 깨끗한 걸 골라 빌렸던 터다.) 책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짜증이 나기도 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싫어하므로) 눈알을 굴리기도 했고, 뻑뻑해서 굴리기도 했고... 그렇게 눈알 스트레칭을 했을 뿐이었다. 그 상태니 머리도 멈춰 있었다. 내용이 짜증나서 잠시 정신이 어디 가출한 상태였다. 그는 서서 질문을 퍼붓더니 내가 고장난 로봇처럼 (NPC가 말을 걸어 놀란 사람처럼) 멍 때리고 있자 "너 길 잃은 것 같아!" 하고 전철에서 내려버렸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분도 "너 길 잃었어? 어떡하지?" 하고 바톤을 이어받다가 멍 때리는 나를 보고 아니다 싶었는지 자리에 앉았다.


미안하다 눈알 스트레칭을 해서....


이렇게나 친절한 세상이다. 이 곳에 오면 정말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대개 나를 무지 어리게 봐서 그런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다 친절값이 엄청나다. 그래서 여기 생활 묻는 여기 먼저 온 이들에게 "너무 좋다" 하면 어떻게든 욕을 해보려는 이야기들이 따라붙는다. "몰라서 그런다" "인종차별 한 번 당해봐야 한다" 악담들 아닌가? 이게 무슨 농담처럼 건네진다. 그래서 한국인들을 피하게 된다. 다 그런 건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있던 곳이 좀 뭐랄까. 이런 말 미안하지만 여기서 터잡은 사람들은 한국인들끼리 놀까? 아니라고 확신한다. (뭐 타겟층이 한국인이거나 돈을 벌어야 해서=자기 사업 그렇다거나 하는 등 일부 제외) 자신들의 경험이 전부인양 떠드는 이들이 넘쳐난다. 각자의 이야기는 각자의 사연일 뿐이다.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이야기들로 이뤄진 생명체들이다. 각자의 경험은 정말 다르다. 남이 좋다는 것에 뭐 뿌리는 건 정말 아시안만한 사람들이 없다. (일본인 제외. 제외의 이유는 상대적으로 많이 겪어본 적이 없어서다. 역사적 이유 아님. 이 이야기의 흐름과 맥락에선 내가 이 곳에 나와 일본인을 많이 겪어보지 못해서다. 친절한 일본인들만 겪었음. 그것도 복이네.)


아무튼,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 속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가게를 가면 빵을 주고, 베이글 가게를 가면 베이글을 준다. (빵이나 베이글이나... 하지 마라. 여기선 베이글 힘이 세니 이렇게 나눴다.) 왜 그럴까? 거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어딜 가나 묻지 않아도 너 하고 싶은 것 해주겠다는 이들이 넘쳐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자들 사이에 내버려진 적은 처음인데, 고인물 한국인들은 못 괴롭혀 안달이고 현지인들은 친해지자거나 도와주고 싶다고 다가온다. 요즘은 유학생들도 다가온다. 그니까, 결론은 뭐냐 하면, 나는 고인물이 싫다는 거다. 아, 공부라는 나름의 정화작업을 하는 고인물은 단연 제외다. 많이 없어서 만나면 그저 존경한다. 손에 꼽는 나의 선배들. 한 손에 꼽히니, 개탄할 노릇....은 아니고 그런가보다~ 하고 난 정화작업하는 선배들의 길을 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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