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로 쓰는 앎Arm Nov 04. 2016

시간의 몽둥이질

시간은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를 아주 잘도 속인다. 처음에 아무것도 몰랐던 이들이 시간이 준 얄팍한 지혜에 기대 초기부터 아주 현명한 인간이었던 것처럼 연기하거나 혹은 모든 걸 알았던 이들이 새하얀 백지인 척 연기해도 다들 속아 넘어갈 수 있다. 때로 시간의 흐름보다 자기 내면에 중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 그걸 포착해내도 그가 시간의 힘을 이기기란 도대체가 쉬운 일일 수가 없다. 시간만큼 강력하게 모든 걸 빨아들여버리는 건 도무지 찾아내기가 어렵다.


시간은 몽둥이질을 한다. 당신과 나에게 모두 그렇다. 당신이 나를 그리워했다 쳐도 당신은 이내 시간에 가격 당해 곧 잊고 아주 잘 살게 될 것이며 나 또한 그렇다. 그게 슬프다고 질질 짜는 것도 시간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이어서 이내 시간의 손을 잡고 훌쩍 우울의 시간을 떠나 다른 차원의 우울로 가거나 혹은 달라진 감정을 잠시나마 마주하게 된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아주 잘도 속인다. 그래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나 때론 시간을 속인 채 간직하거나 꼭 풀어야 할 것들이 있어서 그가 무한히 야속할 때도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는 아주 그나마는 공정한 편이다. 그래서 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들에겐 삶이 단순하다. 시간의 손을 잡고 매 순간 마주하는 일들보다 시간이 보여줄 미래를 보거나 혹은 그 힘에 몸을 싣고 둥둥 떠다닌다면 어느새 시간은 다른 광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시간이 좋고 손목시계를 차고 나면 자꾸 들여다보게 되며 시계 모양의 액세서리를 보면 꼭 한 번 눈여겨본다든가 그 어릴 적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가끔씩 마음을 주곤 하는 것이다.


시간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걸 손에 잡고자 하는 이도 결국 시간에 밀려 떠내려가기 마련이고 시간의 힘을 이겨보겠다고 애쓰는 인간의 애틋한 감정들도 또한 시간에 진다면 이내 별것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믿는 것은 꽤 든든한 일이 되는 것이다. 시간은 내가 뭘 하든 뒤에서 묵묵히 흘러가고 있는 장엄한 존재여서 그냥 시간의 힘을 믿고 오늘을 또 감내하면 시간은 새로운, 그러나 별다를 게 없는 같은 오늘을 모두에게 또 제공하는 것이다.


때로 돈이나 권력이 시간에 장난을 치려할 때도 시간은 그냥 묵묵히 흘러 수십 년 수백 년이 흐른 후 그때의 모습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곤 한다. 물론 시간을 기록하는 역사의 힘 혹은 힘이 기록한 역사에 모두가 속을 때도 있으나 시간은 또 그저 흐르더니 그걸 또 까발려내곤 하는 것이다. 시간은 그저 시간이지 누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냥 사는 거다. 시간이 흐르면 별 일 아닌 일들 투성이다. 시간의 관점에서 시간이 볼 때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상처받을 일 투성이기에 또 암담해하다가도 다시 정신을 들어 시간의 힘을 확인하고는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는 일의 순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 게 없으니 기대하지 말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