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나는 커피는 왜 사랑받지 못할까?
구수하다
친숙하고 정겹다. '고소하다'를 넘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 표현은 주로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콩국수, 숭늉, 누룽지 등을 먹을 때 느껴지는 밥알의 단맛과 곡식의 고소함이 쫀득하게 입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가 해준 음식에, 구수하고 좋다 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분명 칭찬을 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커피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다음 질문은 뻔히 보일 것 같다. 구수하다는 표현은 커피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여전히 좋은 커피를 말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현재 흐름에 있는 스페셜티 시장 속의 커피에서는 좋은 커피와 구수한 커피는 그 방향을 조금 달리한다.
맛에 관한 글을 쓸 때에는 항상 조심스럽다. 개인의 기호를 평가하고, 어떤 것은 좋은 커피이고 아니고를 얘기하는 것은 모든 바리스타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개인이 각자 가지고 있는 취향을 존중하고, 절대 강요하는 글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새로운 경험을 위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
커피 하면 스타벅스지
'커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브랜드는 아무래도 역시'스타벅스'이다. '블루보틀'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매장의 개수나,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졌는가를 생각해 볼 때, 그 차이는 아직 크다. 우리나라에만 수백 개의 매장이 있는 스타벅스의 커피를 우리는 가장 편하게 접하며 생활해 왔기에, 입맛의 기준이 스타벅스의 커피에 맞춰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커피계에서 엄청난 힘을 떨치고 있는 스타벅스는 전 세계에 수천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진 쪽에선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각 매장에서 '커피의 퀄리티를 어떻게 하면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더해서 매년 사용하는 엄청난 양의 커피의 소비량을 생각해보면, 재료 자체의 품질만 가지고는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스타벅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중, 약배전 로스팅보다는 강하게 로스팅하기
운영진의 선택은 강배전의 로스팅이었다. 원두의 색이 짙어질 때까지 오래 볶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상대적으로 내리는 방법에 따른 맛의 민감도가 떨어진다. 짙게 구우면서 생기는 씁쓸하고 다크한 맛들이 어떤 색 위에도 덮이는 검은색처럼, 다른 맛의 미묘한 변화들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더해서, 다른 스타벅스의 주력 메뉴인 밀크 베버리지들에서도, 각종 시럽과 소스 사이에서 커피의 맛을 뚜렷하게 내는 데에는, 다크 로스팅된 커피가 더 유리하기도 했다. 일정한 맛을 유지해야 하는 대기업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스타벅스의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와 다크 로스팅 된 커피가 이어져, 좋은 커피는 고소한 커피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강배전은 로스팅을 길게 한다는 의미와 같다. 생두를 긴 시간 볶아 색이 어두워지게 하는 것이다. 생두 속의 당과 단백질 등이 열을 통해 반응하면서, 여러 가지 맛을 생성하는데, 오래 볶으면 특히 쓴맛이 강해지고, 신맛은 줄어든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커피는 고소하고 다크한,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는 음료가 되었다. 고소한 커피가 나쁜 커피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덕분에, 더 좋은 퀄리티의 커피로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에,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신 맛이 나는 커피가 좋은 커피다
슬쩍 읽어보기만 해도 거부감이 느껴지는,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문장이다. 때문에, 바리스타들이 말하고자 하는 좋은 커피를 오해하기도 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서도, 신맛이 난다고 해서 좋은 커피로 생각하고 참고 마시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서 적으면 아래와 같다.
좋은 커피(생두의 퀄리티가 좋은 커피)에서는 (대체로) 신맛(산미)이 난다
오래 볶으면 볶을수록 쓴맛이 강해지고 신맛은 약해진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스페셜티 등급의 커피에서 나는 신맛은, 생두를 여타 프랜차이즈 커피에 쓰이는 원두처럼 오래 볶지 않는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즉, 신맛이 나는 커피가 좋은 커피인 것이 아니라, '좋은 커피에서는 신맛이 수반되는 커피의 비율이 높다'는 말이 조금 더 참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강하게 볶지 않는 걸까?
스페셜 티 커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편에서 설명했던 것 같다. 요약하자면, 재배 환경에서부터 높은 등급을 목표로 성실하게 관리되어 길러진, 향미의 특별함이 있는 커피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쌀로 치면 특미, 소고기로 치면 1++등급의 재료이다. 커핑이라는 평가를 통해, 일정한 점수를 통과해야만 받을 수 있는 스페셜 티 커피의 등급은 고급 스테이크용 고기와 같다.
고기로 비유한 데는 예를 들기에 적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테이크용으로 준비된 마블링이 좋은 안심을 생각해 보자. 물론, 삼겹살을 굽듯 바싹 구워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아깝지 않은가? 좋은 재료가 되는 고기를 열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 레어 혹은 미디엄으로 먹는 이유는, 좋은 재료인 만큼 재료가 가진 맛 자체를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대패삼겹살은 어떤가? 대패 삼겹살을 레어로 먹는 사람이 있는가? 조금만 두께가 두꺼워져도 바싹 익혀먹지 않으면 느끼해서 먹지 못하는 것이 대패 삼겹살이지만, 바싹 구워 여러 가지 반찬들과 같이 먹으면 먹기에 부족하지 않아 진다. 커피도 같다. 좋은 생두를 가지고 와서, 강하게 로스팅을 하는 것은 최고급 안심을 가져와 대패 삼겹살만큼 바싹 익히는 것과 같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바싹 익혀진 로스티드 한 향에 모두 가려지고 말 것이다. 물론 좋은 생두이니, 강배전 로스팅이 맛이 없을 리는 없다. 그렇지만, 과연 적절한 방법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짙게 볶으면 결국 모두 비슷한 맛이 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재배과정에서 들인 노력과, 맛과 향미의 차이가 무의미하게 되지 않는가?
신맛의 원인을 간단하게 알아보자
신맛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모든 산이 긍정적인 맛을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로스팅 단계에서 각 타이밍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여러 가지 산들 중 대표적인 것들이다.
첫 번째, 구연산
높은 고도에서 재배되는 아라비카 커피에서 발견되는 이 산은 오렌지, 레몬 같은 아주 새콤한 과일과 같은 신맛이 나며, 자몽의 상큼한 신맛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식물이 광합성 과정 중에 당을 만들어내는데 이에 파생된 산이 바로 구연산. 몇몇 연구들은 커피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산은 구연산임을 밝히고 있다.
두 번째, 인산
유기산이 아닌 산으로 커피의 단맛을 끌어낼 수 있게 해 준다. 자몽이나 망고와 같은 열대 과일의 맛은 일반적으로 인산의 결과물이다.
세 번째, 사과산
높은 고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온도가 떨어지면 생장을 멈추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체내에 축적되어 있는 산들은 사과산으로 전화하게 되고 자연스레 당도가 높아지게 된다. 구연산에 비하여 기분 좋은 신맛과 질감에 기여하며, 균형감을 상승시킨다. 사과와 배, 그리고 매실류의 과일들이 사과산이 잘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고, 달면서도 상쾌하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네 번째, 주석산 포도에 흔한 유기산이다. '와이니한 느낌의 커피예요라고' 말할 때 느껴지는 단단한 산미를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클로로겐산
카페인산과 퀸산의 결합으로 구성된 천연 화합물이다. 커피의 향미에 기여하며, 커피의 좋은 맛을 나도록 해준다. 생두에 들어있는 클로로겐산은 항산화 물질이 있어 노화를 방지하고 다이어트 억제를 도와준다. 활성 산소를 억제하여 동맥경화, 당뇨병 완화에도 효과적이다. 로스팅 과정에서 절반 정도 소멸하고 소멸하는 만큼 퀴닉산과 카페인산은 증가하게 된다.
퀴닉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세한 것은 알기에 복잡하지만, 열을 가할수록 퀴닉산의 양은 증가하고, 그 맛은 불쾌한 쓴맛에 가깝다. 당연히 특정한 향미를 부각시키고자 로스팅하고 추출하는 스페셜티 커피에서는 지양해야 하는 향미이다. 다크 로스팅까지 길게 하지 않는 것도 절반은 이 녀석 때문이다.
원재료가 좋은 생두의 향미가 과한 쓴맛으로 탁해지기 전에 적절하게 로스팅하는 것이 포인트 이기도하다.
어떤 카페에 가야 마실 수 있는거죠?
어디서 그런 커피들을 경험할 수 있는지도 문제이다. 바리스타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손님이 없는 카페가 커피가 맛있다.'라는 말이 있다. 맛이 있으면 당연히 손님도 많을 텐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릴까? 커피는 로스팅 이후에 긴 시간 보관하기에는 그 향미가 시간에 따라 바뀌고, 사라진다. 회전율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맞는 양만큼만 준비한다면 모르겠지만, 덩치가 큰 카페일수록 그 관리가 어려워진다. 대형 카페, 혹은 프랜차이즈일수록 값비싼 스페셜 티 커피를 소비량에 딱 맞추어 준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판매량 같은 다른 요소들도 영향을 주겠지만) 손님이 없는 카페는 크기가 적당한 카페를 얘기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이치에 맞겠다. 판매량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자리가 필요해 들어온 손님보다, 커피를 찾아 들어온 손님이 더 많은 아담한 카페. 손님과 손님 사이에 텀이 적당해서 한잔 한잔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그래서 시간과 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커피를 적당한 속도로 준비할 수 있는 카페. 그런 카페에서의 스페셜 티가 퀄리티가 좋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이런 카페가 무조건 맛있다는 얘기도, 대형카페는 모두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모든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작고 아담한 카페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신맛만' 나는 커피가 아니라, 좋은 커피를 경험하길 바란다
커피는 엄청나게 다양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 시고 쓰고 달고 짜고의 단순한 맛을 넘어, 갖가지 과일, 고기류, 채소류 등의 구체적인 연상이 가능할 정도로 진하게 느껴지는 향미들을 말한다. 스페셜 티 커피를 다루는 로스터와 바리스타들은 생두가 가진 이런 특징들을 가장 잘 살리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 로스팅 정도는 과한 쓴맛의 생성으로 다른 향미가 방해받지 않을 정도여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 약배전의 로스팅에서 그치는 편이 많고 덕분에 파괴되지 않은 긍정적인 향미의 유기산들이 뒤섞여 수십 가지 맛을 내고, 단단한 단맛과 신맛이 함께 느껴지는 이 구간에서의 커피를 이 글에서는 '좋은 커피'라 불렀다.
자두, 복숭아, 사과, 청사과, 적포도, 청포도, 치즈, 우유, 졸인 설탕, 오렌지, 감귤, 레몬 사탕, 시나몬, 자몽, 멜론, 수박, 딸기 등의 기존의 커피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맛들이 커피에서 나타난다. 혹시라도 용감하게 시도했다가, 안타까운 경험으로 인해 '신맛만 있는 커피'에 후회한 적이 있다면, 괜찮은 스페셜 티 커피 한잔을 먹어보길 바란다. 어떤 것이라도 좋다. 독자들 중 에 한 사람이라도 더 '좋은 커피'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