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찾는 일상은 더 이상 이탈리아나 미국에서만이 아니다. 연간 커피 소비량이 1인당 300잔이 넘어가는 한국에서도 이제는 그러한 일상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프림이 들어간 믹스커피의 시대를 지나, 1 잔에 5천 원이 넘어가는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의 커피 고급화, 세분화 전략이 효과를 보면서, 커피는 이제 단순한 카페인 섭취의 용도를 지나, 기호 식품으로써 자리 잡았다. 이제 대부분의 젊은 손님들은 선호하는 커피의 맛을 알고 있으며, 조금 더 진지한 손님들은 커피의 원산지만 듣고도 느껴질 향미를 추측하기도 한다.
덕분에 바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력 또한 늘어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커피일을 한다고 하면, 프랜차이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하나의 전문 분야로써 인정해주는 시선을 느낀다. 과거엔 바리스타를 커피를 주문하면 음료를 만들어주는 NPC(Non-player character:게임속에서 게임의 진행을 돕는 플레이어가 아닌 케릭터)처럼 생각했다면, 이제는 커피를 만드는 과정도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개방되어있는 바의 형태가 늘어나는 것도 소비자들의 이런 시선을 반영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해 보이는 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세 손가락으로 겨우 잡을 플랫화이트 잔에 튤립과 백조를 그려내는 걸 보며, 즐거워하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그럼 정말로 바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눈에 봐도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 바 안에서 적게는 2명, 많게는 6명까지도 일하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뒤 돌아보기만 해도 등을 부딪히는 좁은 바 안에서 밀린 주문들이 뚝딱뚝딱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얘기해 보려고 한다.
카페마다, 그리고 기구들의 배치마다, 나눠진 파트들은 다를 수 있으니,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안의 바리스타들을 공연을 보듯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크게 오더 파트, 베이스 파트, 에스프레소 파트 세 가지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이름은 편의상 임의로 붙였다.)
"주문 도와드릴까요?", 오더 파트
오더 파트는 카페에 온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파트이다. 카페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파트이기도 하다.
준비된 메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각 손님들에 맞는 디테일을 체크하고 오더지에 적어 전달하며, 손님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의 순서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특징과 맛에 대한 설명, 매장 이용에 대한 안내와 손님들의 입맛에 따른 메뉴 추천도 해야 하는 자리라서 일하는 카페에 대한 정보가 많아야 하고, 손님들의 질문에 순발력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플랫 화이트나, 롱 블랙처럼 호주의 커피 문화가 넘어오면서 생긴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이 다른 음료에 대해 질문하는 손님들이 많다. 때에 따라서는 원하시는 음료의 느낌과 맛을 물은 뒤, 맞는 음료를 추천해 드리기도 한다.
원두의 사용량이 비교적 많고 추출하는 시간이 긴 샷을 사용하는 매장의 경우, 진하게 드시고 싶다는 손님에게는 샷을 추가하시기보다는 물의 양을 조금 줄여드리는 게 어떤지 권한다거나, 라떼가 조금 더 뜨거웠으면 좋겠다는 손님에게 우유 온도를 높여 비릴 확률을 높이는 대신 잔을 조금 더 뜨겁게 데워드린다거나 하는 경우의 유동적인 레시피의 변화도 있다.
주문받은 메뉴에 따른 세팅 순서도 중요하다.
따뜻한 드립 커피와 차가운 라떼가 함께 들어왔다. 같은 주문서에 있는 두 잔을 동시에 세팅에 들어가게 되면 추출에 5분 이상 걸리는 드립 커피가 준비되었을 때쯤에는 라떼에는 얼음이 녹아 연해지고, 유리잔에는 물방울이 맺혀있을 것이다. 당연히 손님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더 파트에서 전하는 "드립 커피 추출 마무리에 라떼 세팅해 주세요"라는 한 마디에 에스프레소와 베이스 파트가 한번 더 움직일 일거리를 줄여준다.
이밖에도 컴플레인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파트이기도 하며, 주문이 서브되기 전 트레이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파트이기도 하기 때문에, 꼼꼼하고 경험많은 바리스타가 주로 맡는다.
"시럽 40g이랑 레몬청 30g.. 커피 준비 다되면 얘기해주세요.", 베이스 파트
에스프레소와 물 만으로 모든 메뉴가 준비되진 않는다. 베이스 파트는 이 중간에서 커피를 베이스로 하는 음료 준비와 나머지 베버리지 음료의 세팅을 담당한다. 제한되어 있는 바 테이블에서 큰 베이스 통들과 파우더 병들 사이로 세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손이 정확하고 빠른 사람이 적합하다. 손님이 늘어갈수록 할 일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파트라 체력소모가 큰 편이다.
따뜻한 바닐라 라떼 1잔이랑, 그리고 레몬 에이드 한잔 주세요
스티밍은 에스프레소 파트 담당 직원이 해줄 테니, 스팀 피쳐에 우유를 담아 넘겨주고, 라떼잔과 받침을 준비한다. 라떼잔에는 바닐라 시럽을 담아 머신 앞으로 넘겨준다. 에이드에는 시럽과 청이 필요하다. 얼음을 가득 채운 에이드 잔에 정량의 시럽과 소스를 담아 놓고 탄산수를 준비해 놓는다. 스티밍이 끝나고 에스프레소 파트에서 준비를 끝내면 탄산수를 유리잔에 옮겨 담는다. 슈가파우더를 뿌리고 로즈마리로 가니쉬 한 뒤 트레이에 세팅한다.
앞뒤 주문서에서 겹치는 메뉴의 준비가 있는지 빠르게 체크하고, 한 번에 준비하는 것도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손을 빠르게 쓰다 보니, 세워져 있는 베이스 병이나 잔들을 치는 실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바쁜 시간대의 한 번의 실수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A 블렌딩 1잔, C 블렌딩 1잔.. 으아 다시 뽑아야 된다 이거", 에스프레소 파트
가장 기본인 파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파트이다. 베이스 파트에서 준비해준 잔들에 알맞게 샷을 추출해서 넣는 역할을 한다. 이름 그대로, 샷을 베이스로 하는 음료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메뉴에 따라, 리스트레또, 에스프레소 그리고 룽고를 구분하여 추출하며, 그라인딩 후 무게를 측정하고, 샷의 추출 양상을 눈으로 확인하며,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보완할 줄 알아야 한다. 따뜻한 라떼의 경우, 라떼아트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아트에 익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추출하고 있던 리스트레또를 아이스 라떼잔에 부어준 뒤, 바로 에스프레소 추출에 들어간다. 추출 버튼을 누르고, 베이스 파트에서 넘겨준 스팀 피쳐를 받아 스티밍을 시작한다. 눈으로는 에스프레소의 추출 양상을 살피면서, 손으로 우유의 온도를 측정하며 거품을 주입하고, 다음 추출에 대해 생각한다. '손님이 몰리더라니, 그라인더가 과열된 거 같네.. 세팅 조절해야겠다.'
원두를 4종류 이상 다루는 커피숍들도 흔해지면서, 각 원두마다의 기준되는 맛을 알고 그 오차범위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포터 필터를 끼워 넣는 작업이 은근히 고되다.(오죽하면, 포터 필터를 돌려 넣는 작업을 생략한 구조를 가진 머신이 개발 중이겠는가.) 맛이 끝까지 일관되게 추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좋아야 하는 파트이다.
이 외에도, 설거지를 하고 베이커리를 세팅하고 모자란 재고에 대해 파악하며, 나간 손님들의 뒷자리를 청소하는 등의 많은 일이 있다. 각각의 파트는 유동적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일하고, 한 잔의 음료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손님은 모르게, 받은 음료의 첫모금을 마시는 표정을 살피기도 한다. 눈이 찡그려지지는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지는 않는지, 가슴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잘 나온 음료에 한 모금을 마시고 빙그레 웃거나 혹은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내가 만든 음료로 누군가가 잠시나마 행복해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솟는다. 바리스타의 매력은 또 그런점에 있기도 하다.
드러난 주방 형태의 카페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바리스타는 커피뿐만 아니라, 옷매무새, 일하는 동선, 표정까지도 신경 써야 하게 되었다. 커피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난 거 같아 즐겁고 기쁘다. 개인적으로는 바리스타도 퍼포먼서라고 생각한다. 돈을 주면 커피를 내려주는 자판기처럼 생각하는 대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우리를 생각해준다면, 용기를 가진 우리가 보여줄 재밌는 것들이 점점 늘어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