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이 생각나는 오후 2시 즈음 잠시 커피숍에 들어간다. 통창으로 확 트여있는 이 커피숍은 언제 가도 사람들이 꽉 차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테이크아웃할게요" 기다리는 그 잠깐 무심히 카페를 휙 둘러본다. 특별히 누군가를 볼 의향이 없었지만 어느 테이블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무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형형 색색의 옷이 안 튈 수 없다. 짧은 스커트에 니삭스를 신고 발랄한 걸음으로 진동벨을 들고 내 쪽으로 걸어온다. ‘이상하게 골프는 운동 같아 보이지 않아. 그래도 부럽긴 하다. 필드도 나가고’ 혹시나 나의 이런 시선이 그들에게 닿을까 얼른 시선을 돌린다. 나에겐 운동이란 가쁜 호흡이고 이마와 등을 타고 내려오는 땀줄기이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위안을 하지만 격렬히 골프 잘하고 싶다.
"언니, 골프 등록했어요?", "골프 배워두면 같이 필드 나가고 좋지." 테니스 치는 후배들도 심지어 남편도 골프는 필요하다고 야단이었다. 도대체 사십 넘은 여자에게 골프가 뭐가 그렇게 필요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두통에 대한 강박은 수영, 에어로빅, 테니스라는 운동으로 이어졌고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귀납적으로 나한테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증명되었다. 그런데 골프는 먼저 ‘필요한 운동’이라고 선언하고 들어가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그렇게 등 떠밀려서 골프채라는 것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처음 단추가 잘못 채워진 것을 인정한다. 유명한 프로는 대기가 길었고 그 시간에 노느니 가까운 데서 배우면 되겠지 싶어서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였다. 프로는 타석을 돌아다니면서 5분 정도 레슨을 해주고 남은 시간 내가 연습하면 된다고 했다. 골프채도 연습장에 다 있고 몸만 가서 하면 되니 그렇게 부담 없이 시작하자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부담을 덜어준 것은 저렴한 수강료였다.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프로가 유명한 것도 대기가 많은 것도 수강료가 비싼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골프연습장 드나들면서 7번 아이언으로 어드레스, 똑딱이, 하프스윙, 풀 스윙을 배운 것 같다. 주로 팔로만 친다고 몸에 꼬임을 이용하지 못한다, 머리가 들린다, 어깨로 쳐라 등 여러 얘기 들었던 거 같다. 몸을 꼬았다 풀면서 터지는 힘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데 어쩌란 말인가. 엉덩이 근육(중등근)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작은 공을 치기까지 온몸에서 준비되는 힘의 전달 원리는 머리로도 몸으로도 낯선 경험이었다. ‘도대체 골프는 어떤 운동인 거야.’ 유튜브 영상을 찾아봐도 저런 스윙 궤도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상체 힘, 하체 힘 적절한 힘의 교환은 어떤 건지 궁금증만 커져갔다.
그 사이 여차여차 클럽이 생겼고 개인 레슨을 받기로 했다. 고마우신 분들이 필드에 데려가시겠다 해서 집중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필드에서 처음으로 정규 라운딩을 하는 것을 ‘머리 올린다’라고 하지만 이 말을 쓰지 않겠다. 기생도 아니고 왜 그런 표현을 쓰는지 모르겠다.) 예약하고 찾아간 프로의 과한 자신감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확실히 유능한 사람이었다. 내 스윙을 보더니 잘못된 습관으로 자리 잡힌 스윙은 더한 시간을 요구한다고 했다. 잘못 배운 시간에 교정 시간을 더해야 하니 포기하고 적절한 비거리를 내는 잘못된 스윙에 의존한다고 한다. 이 프로가 괜찮았던 것은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말이 진짜 많았다. 골프의 힘의 방향을 적절하게 잘 알려주었다. 백스윙에서 상체 주도, 다운스윙에서 하체를 이용하는 것들도 그 수많은 언어 표현으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출처: 프리픽
골반을 기점으로 상하체가 완전 따로 놀 듯 비틀어지는 느낌은 언제쯤 완성할 수 있을지. 정말이지 불필요한 곳에 힘이 넘치고 정작 필요한 것에 힘이 모아지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왜 그렇게 팔에 힘을 모으고 당겨서 타이밍을 놓치는지 모르겠다. 말 많으신 프로님의 피드백으로 멘털이 나가버렸다. 골프는 프로와의 신체 접촉이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해서 말로만 설명하시는 프로가 있고 필요하기에 강행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이 프로는 필요한 신체 접촉과 설명 둘 다 노련했다. 특히 머리 고정하는 것, 하체가 스윙을 리드할 때 힘 폭발, 어깨 회전의 균형, 다운스윙 시 아크, 공을 치기 전까지 왼쪽 축을 잡는 것 등 세세하게 시범과 접촉으로 알려줘서 말 그대로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급히 배웠지만 유익한 레슨이었다.
출처: 프리픽
"프로님 필드 나가서 멘털 나가고 집중해야 할 때 생각할 거 하나만 알려주세요." "공만 끝까지 보세요." 필드 나가는 것은 동행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시작이 그렇게 어렵다. 18홀 도는 것이 그렇게 많이 걷고 힘든 줄 몰랐다. 공을 어떻게 쳤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동처럼 보이네 마네 한 생각도 취소이다. 모든 시작은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또 시작이 반이다. 시작해야 더 깊은 세상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드를 나가보니 왜 그렇게 골프를 치려고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꽤 유의미한 경험이었다. 문제는 그런 의미를 유지하기엔 골프는 쉽게 그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겸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준다. 가수 성시경은 골프를 이렇게 말한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에게 골프를 추천드립니다. 자신을 증오하게 돼요. 나는 쓸모가 없는 인간이구나. 왜 내 몸은 내 몸의 주인인 뇌의 지시를 안 듣지? 공을 보라니깐." 우연히 본 영상에 극히 공감했다. 언제까지 골린이 (골프+어린이) 일지 모르겠다. 운동이 재미있어지기까지 (작은 만족감이라도)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지 알기에 골프라는 게 애증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