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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린이의 테니스 배우기

by 자몽에이드


별거 아니지만 나는 주변 지인들이 운동하기를 추천한다. 운동은 상황을 전환시키고 단순한 몰입에 이르게 한다.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조급해지거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된다 싶으면 습관적으로 운동화를 신는다. 분주한 환경을 멈추고 산책길을 걷거나 뛰는 것을 선택한다. 오로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이 길의 완주에만 집중한다. 뛴다면 더욱 남은 거리와 호흡을 분배하면서 몰입한다. 긴 시간도 아닌 그 한 시간으로 뇌가 쉼을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일과 상황을 풀어나갈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다. 별거 아닌 행동으로 삶의 별다름을 체험한 후로는 운동을 멈출 수 없었다. 건강뿐 아니라 균형 잡힌 삶을 위해서 운동과 동행하였다.



이전에 했던 수영과 에어로빅과는 달리 테니스는 배우면 배울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공이라는 것이 그런가 보다.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배움이란 공을 다스리는 것이다. 라켓으로 공을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보내는 그 기쁨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그 맛에 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축구, 농구, 야구 등 공을 다루는 모든 종목이 그렇지 않은가. 볼 컨트롤 싸움이다. 단순하게 말한 이 과정을 위해서 그 얼마나 공을 받았는가. ‘정말 격하게 잘 치고 싶다.’ 마음의 간절함을 몸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뛰고 넘어지고 작은 노란 테니스공에 얼마나 농락당했는지, 얼마나 많은 테니스공을 치고 주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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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재미가 있었다. 잘하면 더 재미있겠지만 못해도 테니스는 뭔가 내 삶의 낭만이었다. 사십이 넘어서 그렇게 뛰면 무릎 나간다는 소리도 들었다. 못할 때는 코치님한테 혼나기도 하고 배우는 다른 사람과 비교를 당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그들과 비교하며 초라해져 울기도 울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한 시간이라도 있으면 테니스장으로 가서 벽치기*나 서브 연습을 했다. 포기하면 그만인데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의 그런 배움과 애씀들이 돌아보니 낭만이었다. 같이 하는 사람들과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와 같은 유명한 플레이어 영상을 보면서 시간이 돌아간다면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테니스장에서 더 시간과 노력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다. "선수는 무슨. 이게 뭐라고. 할 수 있을 때 재미있게 치세요." 코치님은 앉아서 쉬는 꼴을 못 본다. "네. 할 수 있을 때 잘 치고 싶다고요."



잘 치고 싶은 마음은 테니스 복식 게임을 통해서 증폭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팀을 나누면서 스코어와 승패가 있는 운동은 처음 해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원초적인 사람들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처음 느끼게 되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 이. 기. 고. 싶. 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 생긴 승부욕은 아이들의 승부욕과는 비교가 안 되게 유치 찬란했다. 지성과 인격으로 누르기에 날 것의 그것은 불그락 거리는 얼굴로 드러났고 억울한 눈물로 드러났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데 ‘잘하고 싶다’와 ‘이기고 싶다’의 결합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배우려고 하세요." 이기려면 어떻게 해서든 공을 넘기면 된다. 하지만 배운 스윙들이 무너진다. 우린 배웠는데 배운 사람답게 쳐야 한다는 것이다. 레슨 때는 포핸드, 백핸드 스윙을 잘했는데 게임만 들어가면 그게 안 나온다. 공이 떨어지는 위치도 모르겠는데 애매한 자리에 서서 가르쳐주지 않는 스윙을 했다. 또 엄청 혼났다. 주로 왜 거기 서 있는지, 라켓을 왜 뒤로 안 빼는지였다. 게임 레슨이 싫었다. 게임 들어간 것도 정신없는데 코치님은 계속 혼내시고 같은 팀 된 사람한테는 미안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코치님이 가끔씩 모르는 사람들과 게임을 잡아주셨는데 그건 더 미칠 지경이었다. 아는 사람들과 하면 서로 격려해 주고 이해하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그것도 없지 않은가. 원래 테니스는 모르는 사람과 치는 것이고 그렇게 대회도 경험해 보는 것이 코치님의 큰 그림이다. 멘털은 진즉에 나갔고 그런 낭만을 깨뜨려먹는 강행군을 하며 ‘레벨업’을 하고 있었다.



함께 배운 멤버들과 친해지면서 수시로 만나서 테니스를 쳤다. 운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보이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서 편한 게 있다. 원하는 것이 같으니 대화도 테니스로 집중되고 군더더기가 없다. 다들 애 엄마들이라 지지부진 수다 떨 시간이 없다. 빨리 몸 풀고 한 게임치고 시간 되면 가야 한다. 수영도 에어로빅도 테니스까지 혼자 등록했는데 함께 운동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건 감사 그 자체이다. 연습하자, 게임하자 불러주는 그들이 있어서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코치님 말씀이 맞았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못할 상황들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상황이 계속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할 수 있을 때 마지막처럼 즐겁게 해야 한다. 2년 남짓 거의 매일같이 테니스 라켓을 들었는데 지금은 그때를 회상하며 기록하고 있으니 그 유한함에 허전함이 느껴진다.



"언니, 골프 배우세요. 테니스 좋은데 나이 들어 뛰긴 힘들지 않을까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워두세요." 테니스 함께 치는 어린 동생들이 노후 대비 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걸 보니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니깐 또 뭘 배워야 한다면 골프란 말인가. 그렇게 등 떠밀려 골프에 눈을 돌렸다. 인기 있는 프로님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일단 시작이라는 것을 해보자 싶어서 가까운 골프 연습장에 등록을 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뭐든지 그렇지만 골프는 처음 배울 때 잘 배워야 한다. 이 선택으로 골프는 애증의 골프가 되었다.


<Image from pixbay>



*콘크리트 벽에 공을 보내 튀어나오는 것을 치는 연습을 말한다. 주로 연식에 된 흙바닥 코트에 있다. 요즘엔 이 벽이 보이지 않는 코트가 많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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