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두통이었다. 그렇게 운동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이 수영과 에어로빅으로 이어지는 운동을 한 지 어언 4년이다. 하다 보니 그만큼의 시간이 이렇게 할 줄 몰랐다. 내 인생에 운동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젠 운동이 없는 시간은 상상하지 못하겠다. 에어로빅을 20년 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는데 뜻하지 않는 상황이 생겼다.
둘째 아이 학교 입학을 앞두고 개학이 미루어졌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치료제 없는 감염병으로 인한 휴교. 코로나는 그렇게 일상을 가져갔다. 3월부터 수차례 학교 개학일이 변경되었다. 다음 주에는 개학할 수 있을까 기대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미루어진 개학일이었다. 학교와 태권도 학원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나도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남아도는 에너지를 보내기엔 집은 갑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넘겨다 본 창밖에 테니스장이 보였다. ‘여기에 테니스 코트가 있었네.’ (테니스장은 이전부터 있었다.)
5월이 와도 개학은 아직이다. “얘들아, 내일 아침에 테니스 치러 가자.” “와, 나간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9시에 등교하듯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테니스는 개인 운동이면서 실외 운동이 되었다.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네트 건너편의 코치가 전부여서 코로나로부터 안전했다. 확 트인 넓은 코트는 그동안 운동했던 곳과는 사뭇 달랐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애들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애들은 코치가 넘겨주는 공을 라켓으로 잘 받아쳤다. 몇 번 안 한 거 같은데 제법 포핸드 자세가 잡히는 것이 보였다. 내심 뿌듯해하고 있을 때 코치님이 한마디 하셨다.
‘너무 성의 없이 테니스를 배웠나.’ 사실인즉 테니스를 잘 배울 생각이 없긴 했다. 이렇게 있다가 코로나가 풀리면 에어로빅을 할 생각이었고 지금은 애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테니스 레슨은 수요일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4회 있었다. 거의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레슨 시간은 20분이지만 레슨 전후로 빈 코트에서 연습할 수도 있었다. 간혹 레슨 받는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주로 레슨만 받고 갔다. 아이들과 9시부터 11시까지 테니스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거의 우리만 있어서 뛰면서 운동하기 좋았다. 이렇게 보호자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코치님 눈에는 내가 노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코치가 네트 건너편에서 카트에 가득 담긴 공을 하나씩 넘겨주면 라켓으로 열심히 쳐서 넘겼다. 이 간단한 것이 생각보다 안 됐다. 공을 따라가면 자세가 무너지고 자세가 잡혔다 싶으면 라켓에 공을 맞출 수가 없었다. 애들은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빠르게 가서 본능적으로 적절한 자리 선점하지만 나는 이 과정이 안 됐다. 게다가 나는 왼손잡이다. 어려서부터 왼손 쓰는 것을 혼내시던 아버지 때문에 왼손은 나의 부끄러움이 되었다. 고된 연습으로 연필과 숟가락 사용을 오른손으로 옮겼다. 삶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밥 먹고 글 쓰는 손이 오른손이 되었지만 나는 분명한 왼손잡이다. 양치질을 왼손으로 하고 가위, 칼도 왼손을 쓰고 문도 왼손으로 연다. 물론 라켓도 왼손으로 잡아야 했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무의식은 왼손 쓰는 것을 숨겼다. 오랜 시간 전에 쌓여서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일어난 일이었다.
코치는 친절하지 않았지만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다. 열심히 하는 데 늘지 않는 나의 테니스 실력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타점을 잘 못 맞추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발이 느린 것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라켓 돌리는 힘은 영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것이다. “네.” “근데 왜 오른손으로 치세요. 왼손으로 해 보세요.” 순식간에 얼굴과 귀가 빨개졌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의외의 사람이 알게 된 기분이다. 왼손을 쓰는 내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창피했다. “훨씬 낫네요. 테니스는 왼손잡이들에게 유리해요. 어디서든 환영받을 수 있어요.” 굳이 왼손잡이를 밝히면서까지 테니스를 쳐야 하는가. 내가 환영을 받을 존재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 인생에 녹아 있는 단단한 왼손의 무게를 견디고 자신 있게 라켓을 휘두를 수 있을까. 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날것의 나 자신과 만날 일이었던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6월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드디어 개학이 왔다. 아이들 없이 홀로 테니스장을 찾았다. 얼마나 테니스를 배울지 모르겠다. 매일 운동할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기에 코치님이 없는 수요일도 나와서 일명 '벽치기'를 했다. 공의 방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공과의 적절한 거리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몇 달이 지나도 스윙은 변화가 없고 같은 방향으로 오는 공인데도 타점은 엉망이었다. 내일 그만두더라도 지금은 공을 맞추어 괜찮은 스윙을 만들고 싶어졌다. 빠른 발을 위해 테니스 코트 외곽으로 매일같이 왕복 달리기를 했다. 무던하게 자리를 지키는 끈기가 생각지 않게 일어났다. 그렇게 6개월을 훌쩍 넘겼다. 혼자 테니스를 치던 나에게 함께 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코치님이 레슨 하던 비슷한 수준의 초급자들을 불러 모았다. 누구도 내가 왼손으로 라켓을 드는 것을 관심 갖지 않았다. (나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된 복식게임. 게임의 맛을 알게 된 이상 테니스는 그만둘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