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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May 31. 2024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아들과 먹고 걷는 데이트 

"엄마, 오늘 저녁 나가서 먹으면 안 돼요?" 저 정중한 존댓말이 매우 부답스럽다. "뭐 먹고 싶은데?" 살며시 물어보니 "당연히 자장면이요." god의 노래가 머릿속에 맴돈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아들아, 너의 엄마도 자장면이 싫어하는 걸 아느냐. 하지만 오늘 저녁은 아들과 둘이 먹어야 한다. 남편은 출장을 갔고 딸은 오늘 늦는다. 나는 점심을 늦게 먹어서 딱히 배고프지 않다. 이런 연유로 그의 바람대로 자장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해가 넘어가서 시원해진 공기와 바람을 맞으며 둘이 걸어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엄마와 아들이 된 것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자장면과 미니 탕수육을 시켰다. 이 중국집은 짬뽕이 맛있는 집이다. 평소 같았으면 짬뽕을 시켰겠지만 배부르게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배고프면 탕수육이나 몇 개 집어 먹지 뭐.' 앉은 자리가 햇빛이 들어와 어쩌다 보니 아들과 나란히 앉았다. (데이트인가) 음식을 기다리며 마땅히 할 말이 없 티빙을 켰다. "엄마, 누가 이기고 있어?" 이제 시작한 야구 경기는 아직 득점이 없었다. 아들과 야구를 같이 보니 뭔가 얘깃거리가 생긴다. "오늘 투수가 잘해야 하는데. 오늘 이기면 3번 연속 이기는 건데 말이야. 아들 이 타자가 정말 잘 치거든." 시큰둥 듣고 있던 아들에게 자장면과 탕수육이 나왔다. 배가 고팠는지 정말 잘 먹는다. 아들은 먹고 나는 야구를 본다. 한참 먹던 아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안 먹어?" 욱하는 마음을 부여잡는다. " 아들아, 그걸 이제 알았니. 엄마는 안 시켰잖아. " "그렇구나" 그리고 또 맛있게 먹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안 먹는다고 말을 안 하긴 했다. 그래도 시킬 때 보거나 그도 아니면 안 먹고 있으면 궁금해한다거나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나한테 너무 무심한 너 어쩌면 좋니 하다가도 너무 배고파서 그랬을 거야 하면서 스스로 위로한다. "아, 오늘 왜 이렇게 못 치는 거야. 점수 지금 내줘야지, " 괜히 야구 경기를 보며 심통을 낸다. 슬프다.




"엄마, 배 부르니깐 좀 걷다가 들어가자." 그래  좀 걷자. 아들과 걷는다. 아기 같았는데 이젠 귀여움을 찾아야 보일 정도로 컸다. 산책길을 걸으며 아들은 어느 유튜브에서 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돼지 그만 좀 보렴." "엄마 엄청 재미있어." 둘 다 듣지는 않고 자기 말만 한다. 하늘을 보니 달이 둥글다. 보름인가. 핸드폰을 열어 확인하니 오늘 보름 맞다. "달 좀 찍고 가자. 아들 엄마 손 떨려. 네가 찍어줘." 아들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스트레칭을 한다. 달우물까지 잘 찍히는 쾌청한 좋은 밤 날씨였다. "이만 가자" "엄마 조금 더 찍고" 지금 산책길 근처 논에는 그렇게 청개구리가 운다. 내 옆에도 청개구리가 있다.  



남편과 꼭 닮은 아들은 얼굴만 닮았지 내 말을 하나도 안 듣는다. 평소에도 안 듣고 둘만 걷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안 듣는다. 아빠 닮았으면 분명 다정한 면이 있을 텐데 쟤는 왜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하지. 날 닮은 건가? 나를 닮았다면 우리는 계속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일까. 아들이 커가는 건지 아님 성격인지 잘 알 수 없다. 아무튼 오늘은 그렇게 그와 먹고 걸었다. 마냥 손잡고 걸을 때가 좋았을까. 그땐 귀여운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내가 지금은 그거 받고 하나 더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이쯤 해 두는데 언제 또 나의 평화가 깨지면서 아들과 대치 중일지 모르겠다. 적당히 웃을 수 있고 적당히 풀 수 있는 데까지 서로를 흔들었으면 좋겠다. 다만 침묵은 피해다오. 어떤 식으로든 너를 표현해 주렴. 저 멀리서 계속 달이 따라온다.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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