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팬으로서 잠실은 언제나 설렌다. 아주 오랜만에 남편과 야구 직관을 보려고 하니 하루종일 언제부터 즐거웠는지 모르겠다. 경기 시작은 두어 시간 남았지만 경기장 주변은 인산인해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싫은데 지금 이 열기가 나쁘지 않다. 경기장 밖은 더웠는데 오히려 야구장 안은 적당히 시원했다. 오늘 경기는 LG 트윈스 홈경기이고 키움과 3연전 중의 첫날이다. "와, 솔직히 LG 팬은 좀 무서운 게 있어." 지나가면서 얼핏 들리는 소리. 그렇다. 예전부터 느끼는 것인데 LG 팬은 정말 열정 그 자체이다. 물론 어떤 팀이든 응원하는 모든 기세는 힘이 넘치지만 내가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LG는 그랬다.
이런. 오늘 선발에 문제가 생겼다. 선발 출전 임찬규 선수가 통증으로 1군 말소가 된 것이다. 구단에서는 2군에서 콜업된 사이드암 이 믿음 선수를 선발로 내 보냈다. 1군으로서 첫 경기가 선발 등판인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구단은 선발 로테이션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선수가 잘해주면 다음 선발을 맡기는 것이고 힘들면 불펜으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믿음 선수에게 1군 경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회에 1 실점, 2회에 무려 6 실점을 하였다. 불펜도 여의치 않았고 어쨌든 선발이 4회까지는 감당해야 한다. 감독도 투수를 바꾸지 않았다. 이미 점수차는 벌어졌고 아마도 던지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보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3,4 이닝은 나쁘지 않았다. 마운드 운영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평일이지만 만석에 가까운 팬들의 응원이 계속 됐다. 결국 선발 투수는 4이닝까지 96구를 던지며 11피 안타 4 볼넷, 2 탈삼진, 7 실점을 하였다. 패전 투수가 되었지만 구단으로서는 불펜의 소모를 막을 수 있었고 투수 본인에게는 경험을 얻었을 것이다.
"바뀌 주려고 했는데 9회까지 끌고 갈 수가 없어 최소 4회까지는 던지게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불펜을 3회부터 대기시켰는데 4회까지 끌고 가더라. 큰 경험이 됐을 것이다." -경기 후 염경엽 감독 인터뷰-
지고 있지만 (이기면 당연히) 직관은 재미있다. 야구장의 그 넓은 초록의 그라운드가 가슴을 뻥 뚫어주고 냄새로 홀리는 군것질거리들도 맛있다. 자리가 좀 불편했지만 신나게 같이 응원하다 보면 그저 웃고 떠들 수 있다. 둘러보니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 퇴근하고 정장 차림으로 온 사람들, 야구 모르는 친구들 데리고 온 사람들 참 다양했다. 남녀노소 즐기고 있는 모습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LG는 키움과 경기 1차전에서 11대 3이라는 스코어로 졌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과 경기를 리뷰한다. 선발 투수에 대한 마음이 진하게 남는다.
"2군에서 올라왔는데 패전투수되고 점수차도 커서 충격받은 거 아닌지 몰라. 괜찮을까."
"괜찮아. 1군에서 공 던질 기회를 갖지 못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아. 기회는 축복이고 실패는 경험이야. 그런 기회 자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데."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모, 엄마 마음은 첫 기회에 촥촥 꽂혀서 꽃길 걷길 바라는 거 아닌가."
"경기는 또 이기면 돼. 그런 날도 있는 거야. 감독도 아마 그런 생각일 거야."
"그렇겠네. 그런데 오랜만에 직관 갔는데 패배요정 됐네."
"이기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배움이 있어. 우린 다음에 또 직관 가면 되는 거고."
야구 선수들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경기가 있기에 매일 승패와 만난다. 타자도 10 타석 중에 3번 안타 치면 잘하는 선수이고 투수도 여러 이유로 선발 로테이션 대로 가기가 쉽지 않다. 투수는 시즌 10승이면 훌륭하게 잘 던진 것이다. 잘 던지고도 패전 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고 부족해도 승리투수가 될 수가 있다. 매일 만나는 승패는 어떤 느낌일까. 어떤 멘털을 가지게 살아가게 (살아남게) 할까. 운동선수가 멘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실력은 기본이고 그다음은 맡겨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비단 운동선수뿐이겠는가. 애쓰고 힘 빼야 하는 경우는 일상에서 많이 만난다. 운동선수처럼 드러나는 승패는 아니지만 힘을 쓸 때와 내려놓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존재하지 않은가. 여러 생각과 여백을 남기며 집으로 돌아간다.
"종종 야구도 보러 가고 하자. 나오니깐 좋네."
"그래. 그러자. 좋네."
오늘 힘겨웠지만 내일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선수들에게 힘과 용기를 남긴다. 그대는 훌륭하고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