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코너의 작은 김밥집. 메인 도로와 떨어져 있어서 쉬 찾아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동네에서 알아주는 맛집이다. 딱히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어 거의 다 포장해 가는 손님들인데 어떤 날은 주문이 많다고 그냥 나올 때도 있다. 메뉴는 김밥, 매운 김밥, 참치김밥, 키토김밥 이렇게 4가지가 끝.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맛있다. 김밥 포장도 기다릴 겸 사장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체인점도 아니고 이렇게 작게 사업을 하시는데도 잘 되는 것이 궁금했다. 아니다. 그냥 말 걸고 싶었다.
친한 척은 타고나길 못한다. 자연스럽게 슬쩍 말을 건다.
"사장님, 김밥이 너무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올 때마다 기다려야 하고 손님이 많아요."
"감사하죠. 많이들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근데 다 직접 만드시는 거예요?"
정말 이런 질문부터 할 생각은 없었다. 요즘 세상에 재료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네. 저는 재료들 다 제가 만들어요."
"네! 왜요?"
너무 뜻밖의 대답이라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무례해 보였을까. 하지만 정말 궁금했다. 편한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재료를 만드는지.
"김밥 재료를 받아서 하면 김밥 맛이 다 똑같잖아요. 저는 그게 싫어서... 우리 애들 해줬던 김밥을 그대로 해서 파는 거예요."
"아니. 평소에 김밥을 이렇게 말아서 애들에게 해 주셨어요?"
"네. 애들이 운동을 해서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줬거든요. 그거 그대로 하는 거예요."
재료를 물어본 것이 영 엉뚱한 질문은 아니었다. 평소에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보통의 김밥 맛이 아닌 뭔가 다른 맛을 느꼈을 것이다. 무의식에선 이 다른 맛은 맛있었고 계속 찾는 맛이 되었지 않았을까. 운동하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집밥을 못 먹으니 도시락이라도 만들어서 먹였던 엄마의 마음이 창업까지 갈 줄 누가 알았을까. 그저 하루하루 도시락을 쌌던 평범한 엄마였을텐데... 굳이 내 김밥은 팔 수 있을까 비교하지 않으련다. 그저 매일의 반복되는 일과이지만 그것이 나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육아든 일이든 삶의 진심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행복했다. 나에게 이런 만남이 생기다니, 이런 뜻밖의 시간이 주어지다니.
문득 나의 반복되는 일과를 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 쓰다 말다 하는 글들이, 매일 뭐 먹을지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요리와 일하는 학교,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것이 나를 표현할지 모를 일이다. 어떤 것은 유별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고 어떤 것은 있었냐는 듯이 대중에 묻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를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 내가 하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최저 시급도 못 받는다 하더라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두는 습관이 나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 더 여운이 남는 것은 남들 다 가는 길이라도 내가 싫으면 나의 길을 가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고생(?)이 따른다. 김밥 재료를 일일이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장님도 그게 힘들다고 하셨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맛을 낸다. 일반적인 맛이 보장된 남들이 다 하는 방법은 내가 원하는 맛, 내가 만든 것을 나타내는 맛을 낼 수가 없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선택하려는 순간, 그 순간에 나의 생각, 신념이 표현된다. 그저 순간의 기분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닌가. 그 돈을 버는 일에 나의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렇게 행동하고 나의 것을 표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 모두 연습(학습)이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가족, 친구들, 모임에서 외식을 한다고 하면 메뉴 선택을 나 스스로 하지 않았다.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선택된 것을 먹었다. (남편 하고 먹을 때나 회가 싫다고 말할 뿐) 모임도 먼저 만들지 않게 되고... 물론 살아갈 수는 있다. 색의 명도가 떨어지고 채도가 올라가도 색은 색이지 않는가. 그렇게 흐릿한 선택에 나를 두다 보니 결정장애가 따라오고 선택해도 선택하지 않아도 만족하지 않는 상태가 생기더라. 작은 것들에 표현하지 않은 내가 쌓이니 색이 아니라 무채색이 되는 기분이었다.
얘기는 길어졌다. 궁금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애들은 어떻게 돌보면서 일하는지,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인터뷰도 아니고 이렇게 물어봐도 되나 싶지만 우리 나이가 그렇지 않은가. 40대 아줌마끼리 얘기하다 보면 특유의 친화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나 애를 낳고 기르는 육아코드가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지' 하는 유대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여 이렇게 길게 수다 떤 게 얼마만인가.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인사하고 두 손 가득 김밥을 들고 나오는데 기분이 즐거웠다. 몽글몽글해진 마음이 하늘을 떠 있는 구름처럼 폭신하고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