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 그리고 여름. 야구 열풍과 육아의 여유가 만났다. 아이들이 제법 크면서 남편과 데이트를 야구장에서 할 수 있는 시공간이 드디어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여기저기 밀려드는 인파에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야구장 앞.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야구장 좁은 입구로 빨려 들어가면 탁 트인 시야의 초록 그라운드를 만난다. 좁은 구역을 지나며 자리를 찾아 앉지만 여기가 내가 아는 그 야구장 맞나 싶다. 눈을 감으면 마운드에서 긴 머리카락 날리며 투구하는 이상훈 선수가... 보이지 않는구나... 야구장에 아는 그 오빠들은 없다. 그때 나의 오빠들은 무표정한 감독, 하이파이브하는 코치, 말 많은 해설위원들이 되었고 지금의 나 또한 어린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씨 좋은 이모가 되었다. 어찌 되었던 집관에서 직관으로 바뀐 야구 경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잠실을 찾게 되는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사춘기 아이들은 다 그런가. 왜 가족과 함께 나가자고 하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지. 불과 작년, 재작년만 해도 주말에 나가자고 조르던 것이 기억이 안 나는가 말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우정섬에 가려진 불 꺼지고 쪼그라든 가족섬의 일원으로서 불이 꺼지지 않는 발악을 하고 싶었다. 이런 시간을 극복하고자 남편과 나는 한 달에 한 번의 주말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패밀리 데이를 만들었다. 가족 카톡방으로 초청장을 보냈다. "제1회 패밀리 데이 0월 0일 토요일, 장소는 ** 볼링장, ## 음식점, 스케줄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그렇게 어느 날의 패밀리 데이는 야구장이었다. 4인 가족은 그렇게 처음으로 야구장으로 패밀리 타임을 가졌다. 일단 가면 재미있고 먹는 것도 해결되고 1석 2조 아닌가. 야구 규칙도 모르고 야구장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둘 다 좋아했다. 그 후로 홈경기 일정을 체크하고 11시 티켓팅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쯤에서 언급하자면 본인은 LG팬이다. 남편은 야구를 좋아하는 아내를 따라 LG 응원석에 앉았고 아이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그 옆에 앉아있다. 어찌 됐든 온 가족이 야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외향적인 남편과 딸은 야구 직관 응원을 즐긴다. LG 야구 선수 오스틴은 한국 야구의 홈과 원정 두 팀으로 나누어서 응원하는 것과 각 선수들마다 있는 응원가가 인상적이라고 한다. "엄마, 응원을 제대로 하려면 유니폼이 필요해." 딸이 말한다. "너 선수들 이름 알아?", "응, 나는 문보경이 좋더라고." "난 오스틴" 아들이 무심히 말하고 남편까지 거든다. "난 박동원." 눈치껏 손뼉 치며 소극적으로 응원을 따라 부르던 4인은 선수 유니폼을 입고 목 터져라 응원하는 4인이 되었다. 야구장에 가면서 응원가를 플레이리스트에 넣어서 듣는다. 1번 타자부터 9번 타자까지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웃으며 율동하며 즐거워하는데 사실 이게 이렇게 웃길 일인가 싶기도 하다. 당분간 패밀리 데이는 야구장이 될 듯하다.
<한화하고 직관 인연이 깊다>
야구장에 가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할아버지와 손자까지 3대가 온 가족, 혼자 와서 유니폼을 입더니 세상 열심 응원하는 사람, 퇴근하고 야구장에서 데이트하는 커플, 수학여행 와서 단체로 야구 관람하는 학생들... 올해 야구장은 말 그대로 핫플이다. 2024 KBO 리그는 기존 최대 관중인 2017 시즌 840만 688명을 넘어서 역대 최다 관중 달성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8.17일 기준 838만 4,137명) 누적 100만 관중 이상을 달성한 구단도 현재 LG, 두산, 삼성이며 기아, 롯데, SSG도 곧 100만 관중을 보고 있다. 현재 전체 리그 일정 79%을 소화하고 있는 가운데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동원뿐만아니라 그 기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올해 야구가 제대로 물 만났다. (24.8.14 KBO 보도 자료 기준) 어쨌든 야구는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꺼리는 한 내향인을 불러내서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외향성을 다 끌어모아 응원하게 만들었다.
"난 7회가 한계인 것 같아. 기 빨려서 더는 못 응원하겠어." "왜 이래, 이제부터 시작인데..." 맞는 말이다. "야구 끝날 때까지 모른다." 사실 이 한마디가 야구의 매력을 알려준다. 유난히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스포츠. 계획이 필요하지만 계획대로 안되고 행운을 바라기엔 그들의 간절한 열망이 더 열렬히 드러나는 곳. 외롭게 무너지는 투수를 바라봐야 했고, 몸을 던져도 글러브에서 공이 빠져나가는 무기력을 견뎌야 하는 곳. 마냥 잘하기만 할 수도 없고 마냥 안된다고 볼 수 없는 그런 곳. 그라운드가 그런 곳이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이 여름 땀을 흘렸다. 끌리면 더 멈출 수 없는 도파민이 폭발한 곳. 벌써부터 야구 끝나기가 아쉬운 것은 무엇일까. 행복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