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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May 17. 2024

옷 수선집을 찾습니다

평범에 갇힌 낯선 일상 

"여기 바지 뒤 쪽 바느질이 터져서 다시 박아야겠어."



남편의 말이다. 당연히 나에게 맡기는 이 자세가 마음에 안 든다. 불편한 마음을 표현할까 하다 현실적으로 내가 하지 않으면 진척이 없을 일임을 깨닫는다. '이런 건 좀 알아서 하면 안 될까. 수선집 찾아야 하고 맡겨야 하고 찾으러 가야 하고 귀찮단 말이야.' 혼잣말하며 가입해 놓고 필요할 때만 찾는 맘카페에 들어간다. '옷 수선', '바지 수선', '수선 잘하는' 등의 키워드를 입력한다.  



요즘은 이런 옷 수선하는 집 찾기가 힘들다. 브랜드 옷들은 산 매장에 가면 수선을 해결할 수 있다. 분명 서비스지만 현실적으로 서비스라고 보기 어렵다. 그거 하나 하러 나가면서 에너지와 시간과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문득 어릴 적에 동네마다 있었던 솜씨 좋은 할머니, 아줌마들이 그리워진다. 쓱 훑어보면 한눈에 뭐가 문제인지 바로 아셨던 것이 어린 마음에  마술사 같았다. 새 옷으로 완전히 바꾸는 마법을 부리는 인정 많고 인상 좋으신 안경 내려쓴 할머니. 손이 야무지지 못한 나는 이렇듯 손재주가 뛰어나신 분들을 보면 마음 깊은 존경심이 과하게(?) 나왔다. 



지역맘 카페에 들어가 보니 비교적 가까운 곳에 수선집이 있었다. "어. 여긴..." 비교적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여긴 매일같이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 이런 곳이 있었던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영양탕 옆에 엄마들 입으시는 큰 옷들을 팔기도 하면서 수선도 하는 집이 있었다. <동동 옷집> 상점 안에는 큰 실패들이 줄 맞추어 정리되어 있고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서 있었다. 딱 보니 교회 권사님들 같은데 마침 켜 두신 라디오도 CBS이다. '설교 들으시나 봐. 그런데 이 중에 누가 사장님일까?' 



많은 사장님 후보들 중에 사장님을 찾았다. "사장님, 여기 좀 봐주세요." 자세히 볼 것도 없다. 한눈에 보시고 "이건 다른 곳도 터질 수도 있어요." 바지를 뒤집더니 "여기, 여기도 곧 터지겠네. 다 다시 박아야겠다." 나의 존경의 눈빛을 사장님은 읽으셨을까. 우리 집 근처에 수선 장인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집과 멀지 않아서 시간도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다시 말하지만 맡기러 가고 찾으러 가고 정말 큰 일이다.) 두말할 것 없이 만족스러운 서비스 그 자체였다. 

 


문득 집에 지퍼가 고장 나서 못 입은 남편 옷이 생각났다. 이전에 세탁소에 가서 물어봤는데 옷을 산 매장에 가서 수선하라는 말을 듣고 옷장에서 꺼내지 않았었다. 들고 다시 방문한다. '장인님, 이것도 가능할까요?' 일단 꺼내서 보여만 줬는데 어디서 주섬주섬 지퍼를 찾아오신다. "이 지퍼로 갈게요. 이 지퍼가 더 튼튼해서 망가지지 않을 거예요." 속이 다 뻥 트이는 이 기분을 아려나. 이게 진정 고객 만족 아닙니까. 필요한 사람에게 딱 필요한 서비스. 



그 후로도 나는 매일 같이 수선집이 있는 길을 차를 타고 지나거나 걸어 다닌다. 2년 동안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괜히 의식한다. 눈여겨보는 것이다. 간판이 보였고 창에 쓰인 문구들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수선합니다. 정장, 청바지, 군복" 수선집에 우르르 들어가시는 할머니들도 보였고 차에서 내려 옷을 들고 나와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도 보았다. 창을 닦으면서 청소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면 괜히 자동차 창을 내리고 인사하고 싶어졌다. 관심이 생겼다고 할까. 이게 차도인지 인도인지 모르는 한적한 시골 마을길을 적응 못할 줄 알았는데 마음이 머무는 일들이 이같이 생겼다. 평범하게 일상 가운데 작은 사건들이 그렇게 마음 붙일 이유가 되고 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소중히 여길 이유가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그 평범함에 무료했다. 주목받고 특별한 것이 싫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말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보니 초라하게 보였다. 그게 평범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소한 것들에게도 마음 붙일 이유들은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매일은 같은 듯 낯설고 다른 듯 새롭다. 작은 마음을 그곳에 둔다면 새로운 파장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이 아닌 그저 한 스푼의 마음, 한 걸음의 관심에 그 마음이 따라온다. 나는 요즘 그것들을 발견하는 센서를 작동하고 있다. 일상의 순간들은 의미로 반짝임을 깨닫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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