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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Apr 19. 2024

애들과 산책하고 싶은 엄마

"엄마, 나가요" 하던 애들이 이젠 나가자고 사정해야 겨우 나가준다

"저녁도 헤비하게 먹었겠다, 좀 나가서 걸읍시다!"

"안 나가. 엄마 아빠 갔다 와."

딸이 대뜸 말한다. 하지만 예상했었다. 순순히 나가지 않을 것이란 걸. 제안을 했을 뿐이데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좀 걸어. 너무 안 걸었잖아. 소화도 시키고 얘기도 하고 나가자."

"알았어."

일단 아들은 나간다고 했다. 아들은 그래도 잘 따라 나온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나는."

아들까지 나간다고 한 이 마당에 엄마로서 가족 모두 함께 걷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이런 나의 야망(?)을 읽었는지 남편이 거들었다.

"그래 오랜만에 다 같이 나가자."

"그럼 나가볼까. 아빠랑 얘기해야겠다."

"......"  

남편의 성공을 손뼉 쳐 주고 싶지만 왠지 진 기분도 들고 그래도 다 같이 걸을 수 있으니 궁극적으로는 소원성취한 것인데 이 요상한 기분은 무엇일까. 괜히 여기서 내가 성질을 부리면 나만 손해일 것이 분명하기에 잊기를 선택했다. 운동화를 신으니 룰루룰라 신났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신날 일인가.






멀리 갈 필요 없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아이들이 들들 볶았다. 나가자고. 아파트 근처에 천이 흐르는데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곳을 아이들과 나는 그렇게 걸었다. 아이들은 걷기도 하고 롤러블레이드도 탔다. 킥보드가 유행일 때는 킥보드를 탔고 자전거를 배우고는 그걸 그렇게 탔다. 천을 왕복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를 타다가 물 마시러 내게 오는 아이들은 얼굴이 벌겋고 땀으로 머리가 다 젖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저녁을 먹고 산책하러 다시 나간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다 같이 여지없이 나갔다.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거나 줄넘기를 하고 무슨 운동기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왜 자꾸 올라가려 하는지... 아파트 내부를 순회를 마치면 또 아파트 외곽으로 걸면서 돌았다. 여리고 성도 아니고 돌고 또 돌았다. 이 모든 시작은 아이들이 원해서였다. (니들이 그랬단 말이다.)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나는 이 순간들이 끝나지 않을 거 같았다. 끝이라고 생각한다기보다 그냥 하루 루틴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루틴은 어느새 날아가 버렸다. 추억 속으로... 아이들이 함께 놀지 않는 것이 시작이었다. 남매를 키우면서 정말 많이 듣는 이야기였는데 막상 다가오니 서글펐다. 딸과 아들이 늘 사진 한 프레임 안에서 함께 했었는데 사춘기에 접어 딸은 남동생과 차츰 멀어졌다. 각자의 친구들이 생겼고 재밌었고 바빠졌다. 구글 포토만 2년 전, 3년 전, 5년 전 날들을 리마인드 해 줄 뿐이다.






긴 설득 끝에 밖으로 나왔다. 다 같이 나가면 주로 대화무게의 법칙에 따라서 우리 가족의 수다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남편과 딸이 같이 걷고, 말이 없는 나와 아들이 같이 걷는다. 아들하고는 별다르게 할 말이 없다. 정확하게는 이야기가 이어가지지 않는다. 너무 정적감이 왔다 싶을 때 냅다 뛰거나 (몸으로 노는 게 제일) 딸과 자리를 트레이드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쨌든 (2줄로) 함께 걷는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니깐... 남편과 딸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길을 덮는다. '아, 이제 겨우 2교시 지났구나.' 딸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꼼꼼하게 남편에게 설명하고 있다. 정말 대. 단. 하. 다. 저럴 거면 그냥 나오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것도 작년 가을 산책



산책길을 다녀오면 10000보 정도 되어서 운동하기 괜찮다. 걸음으로서 운동량도 채워지지만 무엇보다 함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걷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처음엔 우습게 여겼다. 하지만 깨달을 수 있었다. "아빠 오늘 어디까지 갈 거야?" 공통의 작은 목표를 가지고 그저 걷는 그 시간이 주는 연대감. 별거 아니지만 그런 시간들을 인식하는 작업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소중한 시간이 너무 쉽게 흘러가기에...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늦추고 싶어서...



"같이 걸어서 너무 좋다. 고마워."

"야야, 그만 좀 투닥거려. 그래도 같이 걸으니깐 행복하다."

"내일도 콜~콜~"



밥을 먹고 함께 예배를 가고 함께 걷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든다. 매일 찍어서 넘쳐났던 애들 노는 사진이 점차 꽃(도대체 꽃은 왜 이렇게 이쁜 건지)과 정보 캡처로 채워지고 있다.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나도 안다. 그래서 진심으로 이전에 당연했던 이런 시간들에 감사함을 말로 전한다. 오늘 함께 걸었지만 언제 또 걸으러 함께 나올지 몰라서. 어쨌든 나는 계속 걸을 것이다. 혼자도 좋고, 같이도 좋고. 그러니 언제고 아이들이 (대화든 용돈이든) 필요하면 "같이 걸을래요?" 해 주었으면 좋겠다. 속으로는 감동받지만 쿨한 표정으로 "운동화 신어." 할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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