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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Apr 12. 2024

날이 좋아서 걷는 사람들

"집사님, 나오세요. 같이 걸어요."


김창옥 교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면세계가 건강한 사람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가 계절의 변화를 알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시고 그에 대해 얘기하셨다면 여러분은 건강하시고 여러분 주위 사람들은 여러분과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실 거예요. 내면세계가 건강할수록 감수성이 좋고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고 인식한대요.




이 강연을 들으면서 뇌리에 스치는 사람들이 있다. 꽃이 피면 꽃이 핀다고 부르고 더우면 더우니깐 계곡을 가자고 부른다. 가을에 단풍지며 단풍 구경 가자고 부르고 더 추워지기 전에 산 한번 올라가자고 부른다. 정말 김창옥 강사님 말씀하신 대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지금의 시간을 감사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다. 또한 나 같은 I 성향 (내향형) 인간에겐 참으로 고마운 만남이다. 부른다고 다 나가진 않지만 날이 좋다는데 나가지 않을 수 있으랴. 그들에게서 나오는 밝은 에너지와 온 지구의 날씨가 나를 당기고 있었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같은 이유로 부르니깐.) 

"어머, 집사님 나와 봐 봐요. 날이 너~무 좋아."

세상에 날씨가 좋다는 것만큼 좋은 '걷기 좋은 핑곗거리'는 없다.



"우리 오늘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크게 돌 거예요."

'음... 길이 보여야 가지.' 나왔긴 했는데 어디를 걷자는 건지 모르겠다. 결혼 후 지방 소도시를 여기저기 살면서 각 지역마다 조성된 공원길, 탄천길, 강변길, 황톳길 정말 다양한 길을 걸어 다녀 보았다. 지금 말하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크게는' 그렇게 말하는 소위 '걷기 위한 길'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흙바닥의 시골길. 걷기 편한 길을 찾아간다면 그렇게 안전한 길도 아니다. 차와 사람이 다니는 경계가 없는 곳. 밭과 집과 길이 함께 공존하는 곳. 시골 마을길이라고 보면 될까. 



걸으면서 집과 밭을 구경하다 보며 꽤나 재미가 오른다. 동네 개들이 돌아다닌다. (이제는 제법 큰 개들이 돌아다녀도 졸지 않은 여유가 생겼다.) 마을을 다니는 개들은 유기견이 아닌 놀러 나온 개들이다. 어떤 집 어르신은 인사하니 들어와서 차 한잔 하라고 하신다. '정겹다', '한적하다', '여유롭다' 같은 말은 잘 못 쓰겠다. 낯설고 낯선 길을 걷고 있는데 이상하지만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좋은 기분이 올라온다.



그녀들이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면 어떤 핑계를 대면서라도 나가지 않았겠다. 앉아서 눈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머릿속으로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으려고 애쓰느라 기빨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걷자'라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걸으면서 무리하게 대화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어머, 꽃 봐. 너무 이뻐.', '어머, 여기 달래가 올라왔네.', '어머', '어머' 자연을 향한 감탄으로 그저 같은 정경을 보고 걸었을 뿐이다. '감탄'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더 깊어지고 덮인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들꽃이 예쁘다는 것을. 봄꽃이 이쁘다는 것을 표현하니 더 예뻤다. 신비로웠고 카메라로 당기면 당길수록 정교하면서 귀여운 색이 빛나는 것처럼 예뻤다.  계절을 알고 감탄하는 그녀들 덕분에 날이 좋은 날은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보게 된다. 톡이 오지 않았을까.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은 독특한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물론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지만, 함께 걷는 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걷다, 미셸 퓌에슈-



좋은 사람들과의 걸음이 얼마나 행복한 에너지를 내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신 건강과 내면의 평안에 영향을 끼친다. 나에게 이런 인연의 기회가 인생에 또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좋은 것을 경험하면 더 하고 싶어지고 그곳에 시간을 쓰고 싶어 진다. 경험했으니 내가 걷자고 부를 수 있고 또 걷자는 만남에 편안하게 나갈 것임이 분명하다. 



이전엔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집사님들과 함께 걷다 보니 '장애 인식 개선 캠페인', '희귀 질환자 곁을 지키는 걷기', '미세먼지 차단 숲 걷기', '밤마실'과 같은 '걷기 캠페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걷기'라는 행위를 통한 어떤 연대가 모여지니 에너지가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 또한 '함께 걷는 그 이상의 무엇'이겠다 싶다. 편한 사람들이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과 걸을 수 있는 핑계가 있다면 (혹은 날이 좋다면) 부담 없이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운동화를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함께 걸어보니 또 걷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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