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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May 11. 2024

난 화가 많은가 봐

씩씩거리면서 운동화를 신는다

"그게 왜 36이니?"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맞는지 확인해 보렴."과 같은 다정하고 우아한 말로 시작하긴 했다. 그랬던 거 같다.  "설명을 도대체 몇 번 하는 거야. 지금 나랑 같이 있기는 하니?" 애들은 엄마가 공부 가르치는 거 아니라고 하는데 이래 저래 어쩌다 보니 5학년 아들과 함께 여태껏 공부하고 있다. '학원을 보내야 하긴 하는데...' 선행을 아들이 원하지 않는다. (나도 원하지 않거든) 굳이 어려운 내용을 배우지 않는데 학원에 보내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다만 고학년으로 가면 공부하는 습관이 중요할 때라고 하는데... 이 마당에 그것도 잘 모르겠고... 어든 오늘 아들과 실랑이를 벌일 이유는 최소공배수이다. 이게 어려울 일인지 모르겠다. 아들도 팽팽하게 맞선다. "어려울 수도 있지."




남편은 여러 번 말했다. 둘이 똑같이 군다고. 도대체가 똑 다른(?) 성격의 갭을 메울 수 없어서 씩씩거리며 오늘도 나선다. "걷고 올 테니깐 해야 할 것(?)하고 쉬어." 애매한 디렉션이 애매한 결과물을 낳을지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본인이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어미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겠다. 운동화를 신을 때부터 생각했다. '오늘 다리가 아파도 지구 끝까지 걸을 테야.'




축지법을 쓴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땅을 차곡차곡 접어서 가는 느낌. 그렇게 빠르게 걸을 수 없다. 올라오는 화를 동력 삼아서 걷고 걷다 보면 살랑이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얼굴과 몸을 타고 지나가는 바람의 부채질에 열을 식히면서 걸음이 조금씩 느려진다. 편안해진다. 들꽃의 흔들림도 보이고 쨍하게 올라오는 푸르름이 비로소 보인다. 아. 그렇지 봄이 오고 있구나. 봄이 왔구나. 멀리 보이는 산은 새롭게 올라온 새로운 가지에서 나온 연두색 잎들로 초록색 모스 새 이불을 덮고 자랑하는 듯하다. "와아." 경탄이 올라온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걷다 보니 걷고 있는 내가 자연에 초대된 것 같은 빨려 들어감을 느낀다. 조용히 흐르는 천은 언제나 저렇게 물량이 없다. 지대가 높기 때문에 비가 내려도 금세 흘러가거나 흡수된다. 고여 있지 않으니 이끼도 없고 그저 얕은 수량으로 흐르는 듯 마는 듯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두 눈 닿는 곳의 날 것의 자연이 들어온다. 아니 무심히 그리고 묵직하게 쳐. 다. 본. 다. 그 자연이 나를 위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작은 위로. 흠... 좋구먼. 




어느덧 전투적으로 땅을 접어가며 나섰던 인간이 여유자적 집으로 돌아온다. 어둠이  내리는 것은 금세 가로등의 불빛이 켜지며 길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다 하고 놀고 있어요." 날 서 있었던 시간이 증발되고 평화가 찾아왔다. 망각이란 이런 것이었던가. 장면이 새로 바뀐 것 같은. 새롭게 갈아 끼운 것 같은 이 느낌은... 



'아무래도 최소공배수가 잘못했네.' 오늘도 이렇게 가정의 평화를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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