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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Apr 05. 2024

남편과 걷는 이유

대화가 필요해

저녁을 먹더니 남편이 말한다.


"산책하러 나갈래?"

"무슨 이 밤에 산책이야, 추워."

"4월이잖아. 이제 날이 많이 풀렸어."

"(그렇긴 하네) 싫어. 혼자 갔다 와.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같이 가자. 우리 대화도 많이 못했잖아."

"(그렇게 나온다면) 그래. 알았어." 



남편과 나는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저녁 약속이 없이 퇴근할 때는 식사 후 당연히 산책을 나선다. 몸도 가벼워지고 대화를 통해 마음도 가벼워지고 일석이조의 시간이기에. 걷다 보면 온갖 이야기가 나온다. 일 하다가 벌어진 상황들, 아이들과 벌어진 온갖 사건사고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들은 근황 이야기들, 딱히 할 말 없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꺼내서 수다를 떨게 된다. 누가 보면 우리 부부가 금슬이 좋나 보다 하겠지만 우린 뭐 그렇게 알콩달콩하게 사는 부부가 아니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대문자 E (외향형)의 성향을 가진 남편의 질문과 경청이 I(내향형)인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있어서 그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겨울은 힘들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부터가 기분이 나쁘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걷기 때문에 다녀와서 몸이 한껏 경직된 것도 싫다. 날씨 핑계로 몇 달간 산책을 거의 못했고 그로 인한 대화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남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실없는 농담들이 그립긴 했다. 그렇게 나서는 낯선 밤공기가 따뜻했다. 춥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만약 내가 지하철역을 걷는다면 그건 힘들고 고단한 일일 것이다. 환승 최소동선의 열차칸에 탑승하여서 가급적 가장 걷지 않는 방법으로 짜서 이동했을 것이다. 한걸음이라도 아꼈을 것이다. 대형 쇼핑몰 주차장도 마찬가지다. 주차장을 몇 번 돌더라도 쇼핑몰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동선에 주차를 하려고 깜빡이를 켜면서 예리하게 빈자리를 노렸을 것이다. 그렇게 걷는 게 아까워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음은 그런 걸음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모델 장윤주 씨가 결혼하기 전에 관심 가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좀 걸을까요?" 지혜로운 방법이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상대와 가까워질 수 있고 알아가기에 좋다. 걷다 보면 내 보폭과 상대의 보폭이 안 맞아 불편할 수 있다. 센스 있게 맞추며 걷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자기 페이스로 걸으며 나를 재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상대의 성격을 발견하고 혹은 자신의 성격을 내려놓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또한 걷다 보면 편안한 대화가 이어질 있다. 마주 보고 하는 이야기보다 같은 곳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더 편안한 느낌. 다들 애인 집(혹은 아파트) 앞 몇 바퀴씩 돌았던 경험 있지 않은가. 걸을 때 하는 대화는 카페에서 눈 마주치고 할 때와는 다른 맛이 있다. 대화가 끊기는 것이 싫어서 이대로 지구 끝까지 걸어갈 것 같은 느낌. (앗! 힐 신고 걷는 건 아닌데... 힐 신었는데 걷자고 하는 애인은 그냥 센스 제로인 걸로.)



결혼 후에 이렇게 걸으면서 웃으며 대화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결혼은 굉장히 복잡한 장치이다. 둘만으로는 풀 수 없는 많은 관계들이 얽히고설켜서 교통정리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갑자기 걷다가 웬 결혼이 나오는가. 하지만 남편과 가족이라는 나의 환경 설정이 단시간 효율적으로 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시행착오, 좌절, 분노, 다툼등의 시간들이 지나오면서 서로를 알아가며 찾아가면 최적화되는데 수년이 걸렸다. (혹은 그 이상... 아니 지금도) 분명히 같이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같이 걷기까지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하루하루 할 말만 하고 살아도 지치고 바빴던 시간들. 아이들 보는 시간으로 인력(?)을 교대했던 시간들,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살았던 시간들... 뭐 어쨌든 남편과 공유되지 못했던 시간들도 돌아보니 공유되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은 뒤엉켜서 함께 한 세월만으로 잘 살았다 마무리하려나 보다.

지금 걸으며 농담 따먹기 하고 그도 아니면 말없이 걸어도 좋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드는데 10여 년이 걸렸다. 쌓여온 시간들이 참... 인지하지 못했는데 함께 걷는다는 것 자체가 감사 거리였다. 감사를 인증하는 시간 같은... 포근한 봄 날씨가 좋은데 밤에 걸으러 나가야겠다. 인증하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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