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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01. 2020

갈비찜

초단편 소설

 할머니는 내게 커튼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선 직후였다. 나는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려다 멈췄다. 어두운 실내, 할머니의 발이라도 밟을까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갔다. 검고 두꺼운 암막 커튼이 비킨 자리로  여름의 햇볕이 침범했다.


덥지 않겠어요?”


 할머니는 대답도 없이 볕을 쬐고 있다.


할머니, 오늘 할머니 생신이시라 지금 작은 아버지들이 같이 오고 계신데요.”


 나는 흔들림 없이 누워있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엄마는 김을 내뿜으며 --거리는 압력솥을 앞에 두고  있다.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안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물을 마시러 냉장고 문을 열었을  알았다. - 거리는 소리가 압력솥에서만 나오는  아니었다는 것을.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고 이빨도 없는 노인네가 무슨 갈비찜을 좋아한다고.  자기가 먹고 싶어서 하는 말이지. 이렇게 더운데 지가 갈비찜을 해봤나, 그렇다고 에어컨을 편하게 틀게  주기를 하나.  날씨에 무슨 갈비찜이야. 아이고  팔자야. 참나. 아우.”


 나는 엄마의 고기압이 나에게로 흐를 것이 두려워 서둘러  방에 들어갔다.


 “얘가  하고 있어. 얼른 일어나. 어른들  오셨는데.”


 이미 김이 한풀 빠진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잠깐 누워있는다는   시간이 흐른 듯했다.  밖에서는  목소리들이 여럿 섞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작은아버지들 내외가 도착한 듯했다.


 거실에 나가보니 어른들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키가 벌써 이렇게 컸네. 이제 숙녀  됐어. 허허. 공부는 잘하고 있고?”


 둘째 숙모는 둘째 작은 아버지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그런  애들이 싫어해. 그냥 용돈이나 주는  제일이지.  그러니?”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쇼파에 앉았다. 첫째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그랬듯이 나에게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엄마는 거실에 교자상을 펴더니  얼굴을 훑어보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아직 덥혀지지도 않은 쇼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의 열기는 조금 나아진 상태였다. 아빠는 형제들이 오자 에어컨을 켰고, 아마  영향이었을 것이다. 갈비찜과 잡채, 새로 담근 배추 겉절이, 조기 구이, 주꾸미 볶음, 새우튀김, 시금치나물 등을 나르고 마지막으로 차갑게 식힌 소주  병을 교자상에 올리고서야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았지만,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숙제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러운 대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을 끄기 위해 주의를 집중했다. 중요한 부분에 빨간 밑줄을 긋는 중이었다. 쨍하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놀란 나는 결국 손목에 빨간 선을 묻히고야 말았다.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아이고 서방님 이게 지금 무슨 행동이에요?”


제가 뭐요. 형수. 형수도 그러는  아닙니다. 형이 아무리 불효자식새끼라도 형수까지 그러면  되는 거요. 엄마를 어딜 보내요? 요양원?  눈에 흙이 들어와도 내가    .”


, 작은   그래요. 엄마 생신날이라 모였는데 좋게 좋게 합시다. .”


작은 아주버님,   그만 드셔야겠어요. 매번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작은 형님이 얼마나 힘들어하실까…”


아니, 제수씨.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데! 제수씨가 투자하라고 했던데 투자했다가 망해서 그런  아뇨?  사람이  때문에 힘든가, 제수씨 때문에 힘들지!”


, 작은 ,  언제  얘기를 지금까지 하고 그래요. 그만  합시다. 그만 .”


야이 새끼야. 너도 그렇게 살지 마라.  마누라가 먼저 빠진  알면, 나한테 연락이라도 해야지, 그냥 있어?”


, 진짜 몰랐다니까요.  사람도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겠어요.”


 나는 그것이 언제 시작될지 마음을 조리고 있었고,  그릇 깨지는 소리, 접시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밥상을 엎었다.


이것들이! 너네 매번 이럴 거면 앞으로 오지 마라. 엄마 생신에 이게  짓들이야?”


형은, 엄마 생각하는 척좀 하지 마요!  엄마를 요양원 보냅니까.  책임  져요!”


내가 이때까지 모셨으면 됐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내가 얼마나  해야 하냐.  형수가 얼마나 고생인지 몰라? 보태주는 것도 없으면서.”


우리가  보태? 아버지 재산  가져갔으면 당연히 엄마  모셔야지.  푼도  받은 우리가  보태!”


 술병 깨지는 소리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서 끝나라. 속삭이는 중에 엄마의 비명이 들렸다.


어머님!”


 놀란 나는 할머니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어른들은  늘어진 할머니의 입에서 큼지막한 갈비뼈를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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