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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Aug 30. 2020

사랑의 경계

초단편 소설


 그의 죽음을 알게  것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였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젊은 여성이 어딘가로 이송되는 사진이었다. ‘남자 친구를 살해한 20 여성 기사의 제목이었고, 나는 안타깝지만 흔한 그런 연애의 종결 이리라 생각하면서도 관음적 호기심에 내용을 살펴보았다. 여성의 살해 동기는 사랑이었다. 그렇겠지. 여성이 살해를 저지른 곳은 K. 내가 사는 도시였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새벽 2. 새벽까지 같이 있었군. 살해 방법은 기도 압박에 의한 질식. 범행 장소는 남자 친구의 . 나는 기사 중간에 나온 사건 현장의 사진에서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집이었다.   내가 자주 갔던 . 내가 옮겼던 쇼파의 위치와 벽에 걸어둔 그림이, 손수 만들었던 드림캐쳐가 사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의 죽음보다 나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집에  놀랐던  같다. 바보같이 그대로 뒀다니.


  5 전이었다.  학교를 졸업해서 처음 입사한 작은 회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1 정도 먼저 입사한 선배였고, 나이도 3살이 많았다. 나는 신입 사원으로서 저지르는 실수를 연발했고, 너그럽게 받아주는 회사 동료들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참지 못하고 거의  울상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부서 안에서 나이와 경력의 차이가 가장 적은 사람이었기에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을 구하곤 했는데, 언제나 밝은 웃음과 부드러운 말로 나를 대해줘 적잖은 의지가 되었다. 3개월이 되어도 늘어가기만 하는 업무 실수에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을 , 그에게만큼은 먼저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 우리는 처음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내가 눈물을 쏟았고, 그의 시답잖은 장난에 울면서 웃었고, 그의 따뜻한 말로 다음날 다시 출근을  의지를   있었다. 나와 그는 그렇게 조금씩 연인이 되어갔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세상은 어쩌면  살아봄직한 근사한 곳으로 다가왔다. 그의 도움으로 회사에서의 실수가 점점 줄어들고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퇴근 후에는 그와 함께 근처 맛집을 찾아가거나 한강 둔치에서  맥주  잔을 마시며 함께 야경을 감상하곤 했다. 주말에는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고, 함께 지방 출장을 가게 되면 출장 뒤에 휴가를 써서 여행 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좋았다.
 그를 알아갈수록 나는   명의 그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에서 그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피곤한 오후 즈음에는 음료수를 돌리며 기분 좋은 농담으로 부서의 분위기를 띄웠고, 남들보다   먼저 곤란한 일을 맡아 해결하곤 했다. 따뜻한  한마디로 긴장감 넘치는 사무실에 열정을 살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퇴근 후의 그는 어딘지 다른 분위기를 내는 사람이었다. 연애 6개월  즈음부터 그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나에게 마음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사랑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는 것을 나는 안다. 단지 비어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자신을 띄워두고 흘러간다고 해야 할까. 말과  사이에 숨겨놓은 감정을 느끼고 즐긴다고 해야 할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코로 들어오는 냄새에, 공원 벤치에 앉아 볕을  때는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움직임에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알게 될수록 나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1년을 만나고서 나는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다. 내가 감당할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그와 처음으로 보내는 밤이었다. 들숨과 날숨, 정적 속에서   없이 움직이는 몸짓,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체온, 그리고 입맞춤. 나는 그의  속에서 그가 경험했을 자유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슬픔도 없고 불안도 없고 걱정도 없이 우리는 하나였다. 일체감에 머무르며 죽어도 좋겠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팔이 나의 양손을 자신의 얼굴로 이끌었다. 나를 향해 짓는 미소에 사랑을 느꼈다. 그를 따라 나의 손은 그의 목을 둘렀다. 손바닥으로 그의 맥박이 전해져 왔다.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팔에 힘을 주었다. 나는 의도치 않았지만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손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벗어날  없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변했고, 나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거야. 도대체 .”
정말 사랑한다면,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지금 죽여줘. 사랑으로 충만할  죽음을 맞이하게  . 제발. 제발. 고통이 아닌 사랑으로 끝맺고 싶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을 주고 싶어.”


 그의 삶의 목적을 알아버린 순간, 겁이 났다. 나는 사랑하기에 살고 싶은데, 그는 사랑하기에 죽고 싶다고 했다.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끝맺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뒤에서 죽음을 생각했으리라.


 스크롤을 올려 살인 용의자의 사진을 다시 봤다. 사진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정말 사랑했기에 발생한 살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속에서 그는 마지막에 행복감을 느꼈을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런 그를 사랑해버린 걸까. 그것은 정말 사랑이라고 부를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인터넷 창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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