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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Aug 29. 2020

폴 집사에 대하여

초단편 소설

 폴 집사가 자신의 사업 얘기를 꺼낸 것은 무더운 여름날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였다. 퇴근길에 폴 집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잠깐 맥주 한잔을 하자고 했기에 마련된 자리였다. 단 숨에 캔 맥주 하나를 들이켠 폴 집사는 말했다.


“집사님. 세상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요. 먹고살려면 회사를 다녀야 하는데 회사에 다니면 말라죽는 것 같아요. 이래나 저래나 죽겠습니다.”


 폴 집사는 주변 신도들을 붙들고 자주 하소연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이 나였다. 나는 평소처럼 조용히 폴 집사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저요. 결정했습니다. 내일 당장 회사 때려 칠 겁니다. 제가 옛날부터 간단한 차 정비는 스스로 했거든요? 자동차 정비소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 교회 교인이 천 명은 되니까, 차가 한 150대가 있다고 치고... 그 차들만 관리해줘도 어떻게 생활은 되겠지요?”


 호프집을 열겠다, 카페를 차리겠다, 장사를 해보겠다 같은 이야기는 폴 집사가 술을 좀 마시면 으레 하는 소리였다.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줬던 다음 날이면 폴 집사는 새벽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또 시작이군이라고 속으로 말하며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  집사가 교회 근처에 가게 자리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곳에  집사는 자동차 정비소를 열고야 말았다.


 얼마인가 지나서  예배 중 폴 집사가 기도하고 싶다고 말하며 강단에 올랐다. 폴 집사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며 얼마 전에 연 정비소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일로 가정에 불화가 생겼고 이혼의 위기인 것도 말했다. 기도의 마지막은 아내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생활고로 아내가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정말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인지, 폴 집사의 정비소를 찾는 자동차가 많이 늘었다. 교회의 전 성도들이 폴 집사의 정비소를 이용하게 되었던 것인데, 목사님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설교에 어려운 폴 집사의 사정을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폴 집사는 점점 표정이 좋아졌고, 15년 동안 전도를 하려고 공을 들였던 아내와 함께 교회에 오기도 했다. 폴 집사의 아내가 교회에 출석한 날 많은 교인들이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어느 일요일, 교회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신도 한 명이 교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써진 피켓은 멀리서 봐도 좋은 내용이 아닌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오른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집사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일주일 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자동차 왼쪽 앞바퀴가 빠지고 말았습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저희 집 식구들이 다 병원에 있어요. 이게 다 폴 집사 때문입니다. 차 정비를 엉망으로 해서!  어떻게 달리는 차 앞바퀴가 빠지냔 말입니다!”


 예배에 참석하려고 오던 교인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게 되었을 때 폴 집사가 나타나 예배가 곧 시작하니 서둘러 들어가라고 말했다. 폴 집사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그 교인을 남겨두고 예배당에 들어갔다. 예배가 끝나자 폴 집사는 강단에 올라와 마이크를 들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차를 얼마나 성심 성의껏 정비하였는지는 여러분도 아시고 저도 알고 하나님도 아실 것입니다. 이제야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고 있는데, 단순한 사고를 저의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눈물로 말하는 폴 집사의 얘기에 여기저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후 피켓을 들었던 교인은 폴 집사와 함께 별도의 자격이 없는 정비소를 소개해줬다는 명목으로 교회를 고소했다. 교인들은 그 교인이 교회 근처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했고, 피켓을 부수고 교인을 넘어뜨리는 일도 있었다. 목사는 설교 중에 우리 교회를 흔드는 이단의 세력이 있으며 우리가 더 뭉쳐야 한다는 내용을 말하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퇴근길에 폴 집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맥주 한 잔을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언젠가처럼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캔 맥주를 들었다. 폴 집사는 소송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정을 받은 것과 무고죄로 그 교인을 다시 고소한 것, 이번 기회로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주 삼아 열심히 맥주를 마셔댔다. 형제님이라고 부르던 사람을 고소하고서 다 집사님 덕이라는 말로 내게 연신 감사를 표하는 폴 집사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르자 나는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폴 집사는 아쉬운 듯 일어서며 교회 쪽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내가 왜 그쪽으로 가느냐고 묻자 폴 집사가 정비소 일이 남았다고 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폴 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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