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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Oct 25. 2020

멀어질수록 만남의 기쁨은 커지고

집돌이의 수줍은 고백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만나서 밥을 먹자고, 차라도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오면 바로 고민에 빠진다. 갈까? 가지 말까? 보통 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일단 나가는 게 귀찮고, 나갔다 오면 힘이 빠지고 피곤해진다. 사람을 만나면 내면에서부터 기운이 빠져버려 그날은 하루가 다 끝나버린 것만 같아진다. 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일단 TV를 켠다. 예능, 보지 못했던 드라마 재방송, 뉴스, 영화... 수십 개의 채널에서는 볼거리가 끝나지 않는다. 누워서 TV를 보다가 슬쩍 잠에 든다. 1시간의 낮잠은 8시간의 저녁잠보다 달고 개운하다. 그야말로 갓성비다. 잠에서 깨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정신이 고파진다는 자각이 들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 모든 것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제로콜라를 마시며 집 안 여기저기 숨겨둔 과자를 찾아 꺼내 먹는다. 곧 다가오는 내일을 앞두고 눈물 나게 하품을 하면서 좋은 하루였다고 감상평을 남긴다.


  왠지 모르게 집이 좋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수업이 끝나면 나는 곧장 집으로 가버리는 집돌이였다. 친구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사랑했기에 친구가 없었을지도 몰랐다(뭐가 되었든 교우 관계는 안 좋았다는 말이지). 컴퓨터와 책, 라디오, TV 등으로 혼자서 놀아도 즐겁기만 했다. 점점 친구를 상대하는 것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대화도 능력이기에 제대로 발달시킬 기회를 일부러 버리고 있던 나는 또래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머뭇거리며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나를 앞에 둔 또래들도 내가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도 가지 않고 책상에서 혼자 '드래곤 라자'를 읽으며 심오하고 방대한, 어딘가 현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가끔 반대편 세계의 같은 반 친구들이 서로 재잘대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집돌이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집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0교시가, 야간 자율학습이 나와 집 사이에 끼어들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내게 집은 잠을 자는 곳이요, 너의 삶은 바로 학교와 도서관에 있다고 소리쳤다. 대꾸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또래들이 그렇게 살았고, 그게 입시생의 정상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별의 아픔을 나중에 올 달콤함을 상상하며 달랬다. 꼭 대학에 가서 그때는 자유롭고 편하게 내 생활을 즐겨야겠다고 생각 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줄만 알았다.


 운 좋게도 대학에 들어와 내게는 과분한 사람들을 만났다. 말주변도 없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나 같은 친구를 찾아주고 이끌어줬던 사람들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선배들, 친구들, 후배들과 놀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에 가는 길도 시간을 맞췄다. 시험기간에는 같이 야식을 먹으며 새벽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도 하고 쉬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갑자기 사람이 변할 수는 없었겠지만, 고등학교 3년이라는 과도기가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게 해 준 듯했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급속도로 방전되는 인간이었지만, 어떻게든 붙잡고 이리저리 다녀준 친구들 덕분에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학교 근처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숙식을 해결하게 돼버렸다. 비록 매일같이 기운이 전혀 없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고 골골대며 다니긴 했지만, 그래서 혼자 좀 있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숨겨져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후회가 되지는 않을 시간들이었다. (군대 얘기는 더 할 필요도 없다.)


 졸업을 하면, 그때는 여유롭고 즐거운 나만의 시간, 집돌이의 시간이 다시 올 줄 알았다.  역시 착각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야근을 하면서, 회식이 잡히면서, 미루고 미룬 모임이 잡히고, 종교활동이 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가족 행사가 있다는 연락이 오고, 워크숍을 간다고 하고, 급한 회사 일이 발생하면서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꿈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간혹, 아주 가끔 쉬는 날이 생기기라도 하면 나는 집에서 휴식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고 의미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피로감이 들며 휴식이 아니고 일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하고 만나자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삶의 대부분을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갈등하고 해결하는 데 사용하기에 자투리 시간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욕구가 심장에 뿌리를 내리고, 혈관을 쫓아온 몸에 퍼져 있었다. 기운도 없고 에너지도 없고, 사람을 덜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코로나의 시대가 왔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 멈춰버렸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외로움의 시간이 이어졌다. 금방 잠잠해질 거라고, 조금만 버티면 될 거라고 서로를 다독였지만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한 동안 나는 고민할 것도 없는 평온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번 명절에는 안 올 거니?"

"코로나인데 조심해야죠. 코로나가 끝나면 갈게요."


"코로나로 인해 현장 예배는 중지됩니다."


"저희 회사 회식은 언제 해요? 네? 네가 책임질 거냐고요?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고요?"


 가끔은 지루하고 답답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서 코로나가 끝나길 바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지금의 상황은 충분히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덜 힘든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고 여겼다.


"오늘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음? 내가?"


 정말 오랜만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온 날이었다. 그런 내게 아내가 물어왔다. 거울을 바라보는 내 표정은 밝았다. 대화에 집중하고 내 얘기도 많이 하면서, 몇 시간이나 웃고 떠들면서 에너지 방전 상태에 있을 터였다. 밤은 늦었고, 다음 날은 출근을 해야 했다. 몸뚱이도 무겁고 땀을 흘렸다가 말라버린 귀 뒤 피부는 끈적거려서 불쾌했어야 했다. 약간 상기된 채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행복했던 것이다.


 코로나가 곧 끝날 거라고 전망하는 사람도 있고 어쩌면 우리의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있다. 사회는 언택트가 새로운 기준이 되는 뉴노멀의 시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면을 구식이자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세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대면해서 만난다는 것이 기뻤다. 만나지 못할수록 더 만나고 싶어 지는 청개구리 심보일 수도 있다. 목이 마를수록 물이 맛나고, 배가 고플수록 밥이 맛난 것처럼 당연하지 않을까. 멀어질수록 가까워졌을 때의 기쁨은 크지 않겠는가. 

 

 코로나가 어서 끝나면 좋겠다. 코로나가 끝나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만나 당신과 함께해서 감사하다고 말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기억이 코로나 이후의 나와 우리들에게, 세계에 아픔뿐만이 아니라 교훈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은 대단히 소중하고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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