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9.03

가정의학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회진을 돌기 전에 교수님과 먼저 모여 환자의 검사 결과들을 보며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한 토의를 간단하게 진행한다. 때로는 그다음 날까지 공부할 것을 주실 때도 있는데, 오늘은 종양에 의한 색전증에 대한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문득 친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친할아버지는 지금 내가 수련받고 있는 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10여 년 전쯤에. 너무 오래전 일이고, 내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일어난 일들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결국 종양에 의한 색전증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친할아버지는 귀밑샘암을 앓으셨었고, 수술도 받았지만 결국 재발을 했다고 들었다. 추적 관찰을 이어가던 중에 뇌경색이 온 것이었고, 결국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수개월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사실 미국에서 대학을 막 졸업하고 귀국한 뒤에야 부모님께서 할아버지 소식을 전해주셨다. 뇌경색이 온 지는 이미 한 달 정도가 지나있었고, 이야기를 나중에 해주신 것은 이미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걱정 없이 학업을 마무리하고 들어오라는 배려였다고 한다.


그때 역시도 병원은 걸어서 10분 거리라 귀국을 한 다음날 바로 할아버지를 찾아뵈러 병실을 들어섰는데, 너무나도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도 많이 미성숙하지만, 10여 년 전인 그때의 나는 더욱 철이 없었기에, 할아버지의 연약한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었다. 친할머니와 병실에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하기만 했고, 그런 바람에 점차 병문안을 가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따금씩 찾아뵐 때마다 할아버지께 꼭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겠다는 말을 전하고 왔는데, 내가 의사가 된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뭐라도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의대 입학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병문안을 미루려고 했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날 밤에 할아버지가 위급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가족이 병원을 찾아갔다. 그날은 생생히 기억나는 것이 처음으로 심폐소생술을 본 날이기도 했다. 온갖 의료진이 할아버지를 둘러싼 채 가슴 압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무섭게도 느껴졌었다. 이제야 든 생각이지만, 이미 손을 딱히 쓸 수 있는 것이 없었음에도 심폐소생술을 진행한 것은 가족들이 임종의 때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쇼피알"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연명치료 계획서를 미리 작성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왜 하필 이 병원에서 수련을 받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동네에 있는 병원이라 들어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괜히 더 많아진다. 가끔은 이렇게 지나온 자리에 다시 오게 되면 지난날들을 유난히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변했는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얼마나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이제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었다 한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가졌어야 했는데, 그 쉬운 걸 못했다는 것이 아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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