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10.08

심장내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오늘은 심장내과로 입원한 어느 환자가 판막 치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위험도가 높은 치료이지만, 수술적 접근보단 시술적 접근으로 전신 마취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당 환자가 전날 수면 마취를 통한 간단한 초음파 검사조차도 견디지 못하여 급하게 전신 마취로 시술을 받기로 했다는 것을 뒤늦게 통보받았다.


수면 마취와는 다르게, 전신 마취는 몸에 더한 부담이 가기 때문에 이전에 앓고 있던 질환들을 미리 파악하여 마취에 문제가 되진 않을지 협의 진료를 통해 확인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폐에 문제가 있던 환자였다면 호흡기 내과 협진을, 신장 문제가 있던 환자라면 신장 내과 진료를.


나 역시 나중에 통보받은 것이라 억울한 것도 있었지만,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지라, 예정된 시술 시간 직전에 부랴부랴 타과에 진료 의뢰를 확인받아야 했다. 특히 혹시라도 시술이 미뤄지진 않을지, 누군가에게 혼나진 않을지 마음 졸이면서 있다 보니, 괜히 예민해지고, 말수도 줄고,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안 좋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나이는 드는데 성숙함은 여전히 부족하구나.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렇게 급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선뜻 뻗어주지 않았다는 것도 느꼈다. 다들 귀찮아하거나 짜증만 내기 바빴고, 남일이라는 생각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 갑작스레 생겼으니 당연 불편하겠지만, 가끔은 자비로운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는 내가 아직 철이 덜 든 것인지 고민하게 됐다. 병원이라 다들 차가운 건지, 그냥 이 병원이 그런 건지, 다른 모든 직장 자리는 그런 것인지.


어떻게 보면 병원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나는 그저 돌고 돌다 한 번쯤 삐걱거린 부품이었고.


다들 왜 그렇게 무관심한 건지, 왜 도울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솔직히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긴 하다. 다른 많은 이들에 있어서 각자 자기 할 일만 하기 바쁘고, 서로에게 관심을 주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우려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느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일, 본인의 대가, 본인의 시간, 본인의 삶, 본인의 생명. 결국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당연한 인간의 모습일 뿐.


나 역시도 문제고, 이런 시스템이 고착된 것도 문제고, 이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게 내버려 둔 의료 정책들도 문제이다. 그 가운데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일단 나부터 잘하는 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


왜 그렇게 답답해하는 건지, 왜 속상한지, 왜 애태우면서 일을 하고 있는지. 잠시 한 걸음 물러나 돌아봐야겠다. 윗년차의 잔소리, 간호사의 핀잔, 교수님의 분노. 굳이 누군가와 다투거나 벌벌 떨면서 있어야 하는 건지.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건지. 돈을 잘 벌겠다는 마음으로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유명한 의사가 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서였을지, 남들이 좋게 봐줘서 시작한 건지, 혹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이 길을 걸어온 것인지.


뭔가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굴러가던 차에 제동이 걸리는 느낌이 든다. 그 시간에 삶을 잠시나마 돌아보게 되고, 가고 있는 방향을 한 번쯤은 더 맞추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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