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11.07

산부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놀랍게도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탄생을 본 적이 없었다. 정상 분만은 대부분 산부인과 의원들에서 진행이 되지만, 병원에서 진행되는 흔한 제왕절개를 본 적도 없었다. 학생 때는 매일 같이 자궁절제술만 봤다면, 인턴 때는 수술방은커녕 병동 잡일만 하루 종일 했던 기억뿐이다. 이 나이가 되었는데,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처음으로 정상 분만을 본 것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비위가 상하거나 속이 울렁거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생각해 왔던 분만 과정보다 훨씬 더 극한인 것을 몸소 느꼈다.


일단 분만실은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던 것이, 윗년차 선생님들의 수술복뿐만 아니라 분만실 바닥이 온통 피로 흥건했다. 그 작은 산모의 몸에서 이 정도의 피가 흘러나온다는 것이 소름 돋을 정도였는데, 아이가 나온 뒤 한차례 뿜어져 나온 피가, 태반이 나오면서 그만큼 더 흘러나왔다. 게다가 피가 자궁과 질 내에 고이면 감염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최대한 피를 세척해 낸다고 밀대로 바닥을 쓰는 마냥 피를 질 내에서 계속 퍼내오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정말 순식간에 진행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아이와 엄마 모두 건강하였다.


하고 싶은 과는 여럿 있었어도, 하고 싶지 않다는 과는 많지 않았는데, 산부인과 파견을 통해 산부인과는 정말 안 하고 싶다는 생각만 더욱 들었다. 여담으로 한동안 리비도는 좀 떨어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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