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11.08

산부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한밤중에 한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친하긴 하나 늦은 밤에 연락할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라서 걱정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해당 친구의 언니가 하혈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보는 전화였다. 언니분은 임신상태였는데, 하혈한 것에 대해 응급실로 가는 것이 맞는지, 혹 다음 날에 다니고 있는 산부인과를 가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고.


임신 중에 하혈을 하는 것은 꽤나 심각한 일이라서 바로 응급실에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 양 자체가 많지 않았다고 하여 나 조차도 고민이 되긴 했다. 마침 내가 산부인과 파견 중이어서, 늦은 시간임에도 2년 차 선생님께 문의를 드리고자 전화를 드리고, 응급실로 환자가 갈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드리니 굉장히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평소에 친절한 선생님이라서 늦은 시간임에도 유선 연락을 이해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니 내가 선을 넘은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새벽 시간은 아니었는데, 그렇게까지 짜증을 내셨어야 했는지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를 위한 일이라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하고 보니, 언니분은 결국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전날 언니분이 다니고 있던 산부인과에서 이미 아이를 유산한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피가 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이미 들었었는데, 그 중요한 이야기를 내게는 쏙 빼놓고 했던 지라 윗년차 선생님께 쓴소리를 들은 것까지 더하여 친구가 꽤나 원망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자세히 문진을 하지 않은 내 탓이 더 클 수도 있으니, 그저 안심의 몇 마디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실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더불어 살고, 서로 돕고 사는 인생.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려면 결코 게으를 수 없고, 늘 발전해야 하는 의무가 느껴질 정도이다. 비단 의료진으로서만이 아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R1 -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