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12.03

감염내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내과 당직을 설 때마다 응급의학과와 마찰이 계속 생긴다. 안 그래도 쉬지 못하면서 당직 업무를 이어가는데 응급실에서 활력징후가 제대로 잡히지도 않은 환자들을 무책임하게 병동으로 올려 보낸다.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환자가 올라오면 한 시간 내외로 혈압이 떨어지거나 맥박이 뜨면서 결국 급하게 중심정맥관을 잡거나 중환자실로 보내게 된다. 몇 번이고 환자 상태가 안정되면 올려달라고 해도, 몇몇 응급의학과 교수라는 놈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환자를 올린다. 어디 감히 전공의가 교수한테 뭐라 하냐는 태도는 덤이다.


유독 악질적인 교수가 한 명 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서 일한 시니어 교수이지만, 그럼에도 의학적으로 문제가 생길만한 결정들을 하면서 거의 병동에 환자를 던지다시피 해서, 환자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간 상황을 이미 여럿 마주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 대해 분개하는 것이, 그렇게 중환자를 한 명이라도 보고 나면 다른 병동 연락들이 쌓여있게 되고, 그만큼 다른 환자들을 돌볼 수 없게 된다. 결국 고통받는 건 돌고 돌아 환자들뿐이다.


내과계 담당 교수님이 해당 사항에 대해서 응급의학과와 수시로 이야기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려지는 결론은 인력부족. 응급실에 내과 질환을 담당할 의사를 뽑는 게 제일 안정적이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업무 부담은 많고 돈도 그만큼 주는 것이 어렵다고. 하물며 그냥 응급의학과 교수를 뽑는 것조차도 힘드니 일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만 더 갈려 나가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게 어딘가 이상한 병원 생태계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결론은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의 말도 안 되는 의료보험 구조 때문이라는 결론만 나온다. 의료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구조 때문에 진료를 봐도 늘 적자뿐인 분과들이 생겨나는 것 아니겠는가. 윗선의 멍청함 때문에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역시도 억울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이다.


솔직히 응급실에서 환자 중심정맥관 하나만 잡고 올려줘도 업무 부담은 급격히 안정화될 것인데, 그것조차 하기 힘든 이런 병원 구조에서 일하는 나 스스로를 탓해야 하는 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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