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1.26

산부인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근 2주간 정말 열심히 돌본 환자가 한 명 있었다. 장기재원환자 알림이 주기적으로 뜰 정도로 병원에 오래 있던 분으로, 전이된 자궁경부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였다. 게다가 연명치료계획도 이미 설립되어 있을 정도로 질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파견 첫날부터 환자를 보기 시작했는데, 이전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열람하지는 못해서 정확한 경과의 흐름을 알지는 못했지만, 당장의 피검사상으로 교정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매일 같이 피검사를 통해서 환자 상태를 평가했다. 그동안 배운 의학 지식들을 모두 끌어와서, 각종 약들과 다양한 수액치료로 환자의 상태를 회복시켜 놨다. 그놈의 전해질 수치. 매일 조금씩 교정하는 것이 영 귀찮은 일이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꽤나 뿌듯했다. 반면에 혈압은 비록 낮은 편이었으나, 승압제 사용 없이도 혈압이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처음 회진을 돌았을 때에는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그래도 침대에 앉아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것이 눈에 보였다. 혹 다시 항암 치료를 이어갈 수 있진 않을지 교수님께 재차 여쭤보곤 했다.


임종이 가까웠다고 생각했으나 환자가 회복하는 것을 보고 교수님께서도 다시 치료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래서 항암 처방을 모두 내고 환자에게 이야기를 하러 갔더니, 정작 연휴 기간 동안 가족들에게 항암 치료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치료를 스스로 거부했다.


그렇게 열심히 환자 상태 회복에 힘써서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직전까지 왔는데, 본인 스스로 미루는 것을 보고 솔직히 짜증이 많이 났다. 연휴 기간에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했지만, 어차피 가족들의 면회 시간이 길지도 않을 것인데. 하지만 전공의로서 그저 교수님을 따를 뿐이고, 교수님께서는 환자의 요청을 전부 다 받아들여 주는 분이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은 목표는 환자 상태가 호전을 보이고 있어 연휴 기간 동안 그토록 가고 싶던 집으로 며칠 지낼 수 있게 보내드리는 준비를 시작했다. 마약성 진통제가 정확히 어느 정도 용량으로 필요한지 계산을 하기 시작하여 경피 제제로 전환을 시도했고, 비위관 흡인기기를 집에 구비할 수는 없어 휴대용 음압 자루 전환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찾아갈 때마다 시도도 하지 않고는 내게 하는 말이 왜 자꾸 퇴원을 강요하느냐는 것이었다. 암에 걸려 본 적 있는지, 암 피검사 수치도 모르면서 피검사를 강행하는지. 말도 전혀 이쁘게 하지 않는데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고 하며 분을 내다 울기 시작했고, 그간 환자를 위해 그토록 열심히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정말 비참하게 여겨질 정도로 내 마음에 온갖 비수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암 피검사 수치는 애초에 나갈 필요도 없는 것인데, 그걸 갑자기 왜 언급하는지.


평소에 병원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라고 거듭 강조했으면서 떠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과하게 열정적이었는지, 말기암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었는지. 그저 입원환자 수를 한 명이라도 줄이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을지. 솔직히 나는 그저 환자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려고 했을 뿐인데 환자를 내쫓으려는 못된 의사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나.


해당 사건이 생기고 나서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 따로 환자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어차피 파견은 곧 끝날 것이었고, 말기암환자의 처방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던지라. 확실히 근데 앞으로 이렇게 열심히 환자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들 그 적당한 선을 지키는 이유가 있던 것을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것일까 싶다.


돌아보면 아마 나 스스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해결을 보지 못해서 생긴 일들인 것 같다. 나약하기 짝이 없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먼지처럼 사라지는 그 결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삶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 짜증 났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암의 진행 상태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모르면서 한 행동들은 아니었는지.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교수님께서 애초에 환자분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적극적인 수치 교정을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1 - 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