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2.10

가정의학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아직 휴가 기간이 남았지만, 일찍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찾아보다 보니, 이전부터 챙겨보았던 롤 프로 경기를 직접 보러 가고 싶다는 마음에 처음으로 종각역에 있는 롤파크를 혼자 찾아가서 경기를 보고 왔다.


게임을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좋아했다. 아마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게임에 기반한 것들이 많아서 더욱 향수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죽하면 처음으로 해보았던 게임이 아버지와 컴퓨터로 했던 버블보블이었다. 이후로는 원숭이섬의 비밀 2, 슈퍼마리오 RPG를 넘어 파이널 판타지 7까지, 수많은 게임들을 해왔다. 특히 대학교에 가서는 가끔씩 워크래프트 3에 유즈맵 세팅을 통해 도타라는 게임을 간간히 했었다. 당시에 유학생이었는데, 아무래도 공부에 대한 부담이 많았어서 친형의 컴퓨터로 혼자 몇 분씩만 한 것이 전부이긴 했다.


의대에 갔을 때에는 도타를 기반으로 롤이라는 게임이 만들어졌었고, 해당 게임을 10판도 안 해봤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정식 프로 경기들이 진행될 만큼 한국에서는 꽤나 인기가 많았다.


라이브 경기들을 보기 시작한 것은 본과 2학년 때부터였다. 본가가 막 왕십리로 이사를 갔었고, 금요일에 시험을 보고 나면 해당 과에 대한 시험이 더 이상은 없어서 주말에 칼 같이 귀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본가로 가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어서 결국 밤늦게 도착하기 일쑤였다. 술도 안 마시고, 근처에 연락할 사람도 거의 없었고, 연애를 하기에는 어딘가 쫓기는 마음이라서 집에 도착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는데, 일찍 잠을 자는 것은 그렇게나 아쉽게 느껴졌었던 기억이 난다.


그 귀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마침 아버지가 응원하는 야구팀인 LG 트윈스가 굉장히 잘하던 시절이라 요약 영상이라도 보라 하여 한두 개씩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뜨는 추천 영상 중 SKT T1 롤 경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괜히 한두 개 보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특히 그 해에 해당 팀이 굉장히 잘했던 시절이라, 어딘가 일상에 치어 자주 지는 기분이 들었다면, 응원하는 팀이 다른 팀들을 찍어 누르는 것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서 꼬박 챙겨보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두 경기들을 보다 보니 선수들 이름이 익숙해졌고, 챙겨보는 경기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보지도 않는데 괜히 틀어놓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소소한 취미로서 적합한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랜 유학생활 가운데 생겨난 아쉬운 취미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형은 특히나 미국에서 치과 의사로서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서 공부를 했었는데, 사람을 좋아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무언가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왔던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이런 게임 역시도.


나 역시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런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크게 삶을 무너뜨리는 취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건강하다고만 할 수 있는 그런 취미는 아닌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런 것이, 실제 경기를 직관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다 보니, 역시나 사람은 사교의 동물이고, 무엇이든 함께 하는 것이 더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여유가 생긴다면 친구들과 경기들을 더 보러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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