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2.11

가정의학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가정의학과 당직은 가정의학과 환자만 보는 것이 아닌 통합당직 체계이다. “이가성비”라는 이름하에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성형외과, 비뇨의학과를 통칭하여 당직을 서고 있다. 다른 세 과는 마이너로 분류되고 대부분 수술적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과라서 정해진 처방만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연락이 있다 해도 큰 문제는 없고, 문제가 생겨도 교수님께 직접 연락드려야 하는 사항들이라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 당직이라면 연락이 하나도 없는 게 일반적이나, 오늘은 정말 드물게 이비인후과 환자에 대한 연락을 받게 되었다. 콧물이 난다고.


처음 해당 연락을 받고 왜 이런 사소한 것을 메시지로 보내지 않고 전화를 했는지 짜증이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전화를 주었던 간호 선생님 스스로 불필요한 전화를 한 것을 깨닫게 하고자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콧물이 갑자기 난 건지, 무슨 색인지, 열은 없는지, 단순한 감기는 아닌지.


솔직히 조금은 꼽을 주려고 질문 공세를 시작했지만, 답변들을 듣다 보니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환자는 하루 전 비과 관련 수술을 받았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양상을 보여, 이는 뇌척수액이 흘러나오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깊은 한숨을 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교수님께 한밤중에 전화를 드렸다. 환자가 콧물이 흐른다고 하는데, 너무 죄송하지만 괜히 뇌척수액 누출 소견인 것 같아 연락드렸다고.


너무나도 감사하면서도 안타까웠던 게, 연락을 받은 교수님이 해당 환자는 누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환자라 뇌척수액 누출이 맞을 거라고 하여 바로 병원으로 출발하겠다고 하셨다. 외래 방과 내시경 기계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도 하셨다.


교수님은 정말 빠른 시간 내로 병원에 오셨고, 이비인후과 외래 방을 준비해 놓은 덕에 뇌척수액 유출을 직접 보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내시경을 통해 환자 상태를 확인한 교수님이 즉시 재수술을 해야 될 것 같다 하여, 결국은 수술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행히 해당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해놓으셨기에 환자도 큰 불평 없이 재수술에 임하였다.


이런 땐 지금 수련받고 있는 이 병원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족한 인력에 교수님까지 밤에 출근하여 새벽에 응급수술을 하시는 모습. 다들 너무나도 많이 고생하는 것 같다. 무얼 위함인지는 각자가 알겠지만, 이유야 불문하고 결국엔 환자의 안위를 챙길 수밖에 없는 그런. 아무래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원이라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은 것 같다.

보릿고개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있으면 2년 차를 시작하게 될 것이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던 1년 차가 끝나게 될 것이다. 윗년차가 될 마음의 준비 따위는 솔직히 전혀 되지 않았다. 다들 그런 거라고 한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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