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1 - 09.15

가정의학과 파견

by 그라스데오

"환자의 처음과 끝에서"


내가 생각해 낸 가정의학과 신규 전공의 모집 광고 문구였다. 환자가 처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1차 진료 의사이기 때문에 그 시작을 뜻하며, 후에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친 뒤 질병 말기의 때에 완화의료를 담당해 줄 수 있기에 끝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가정의학과로서의 정체성은 1차 의료에 좀 더 가깝다고 하지만, 대학병원에서의 정체성은 초기 진료에서 말기, 게다가 미병까지도 보는 자리인 것 같아서 적합한 문구 같았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고, 다른 무난한 모집 포스터가 완성되었다.


실제 신규 전공의가 시작하는 건 내년 3월이겠지만, 가을에서부터 부지런하게 신규 전공의 모집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는 것을 배웠다. 떠나갈 3년 차 선생님들이 인계를 해주고, 2년 차 선생님들은 면접을 주로 담당한다. 1년 차들은 그 외에 모든 것, 특히 지원자들의 평판 조사를 해야 하는 것도 있다. 해당 지원자를 알거나,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해서, 일할 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확인하는 절차. 별게 아닌 거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전공의 한 명을 뽑으면 향후 3-4년을 함께 일해야 하니,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 상황 가운데, 인사정도 주고받던 학교 후배가 해당 병원의 가정의학과에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다는 것을 들었다. 지금까지 수련을 받으면서 배운 것들에 대한 후회는 한 번도 없었지만 솔직한 마음에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 다른 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커서 그 후배를 꽤나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정했으니 오히려 아무 질문도 안 하고, 다른 연락도 안 받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고집인지 패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모르는 가정의학과의 매력이 확실히 존재하긴 하나보다. 이제 반년 되었는데, 무얼 알겠는가. 겸손히 배우는 자의 마음을 조금 더 찾아볼까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1 -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