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꽃피는 편의점

다정한 연애를 보다

by 이앨

늦은 저녁시간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 손님이 왔다. 정장 차림인걸 보니 퇴근길 인가 보다. 즉석식품 코너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김밥, 컵라면, 샌드위치 등을 골랐다. 계산 후 편의점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테이블 위의 음식들과 함께 시간이 다정하게 흐른다. 두 사람을 방해할까 봐 카운터 끝으로 슬쩍 비켜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다정하고 편안해 보였다. 저녁식사를 컵라면으로 편의점에서 먹어도 별스럽지 않은 사이,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이이다. 그러면서도 슬쩍 음료수병뚜껑을 열어 건네는 남자의 손이 애틋하다. 이 둘은 분명히 갓 사귄 사이는 아니다. 쉰 살을 넘어서니 이런 것쯤은 저절로 감이 온다. 저 따뜻한 설렘은 사랑에서 오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종종 20-30대 청년 세대를 3포 세대라고 부른다.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이것은 경제면에서 희망을 품기가 어려워 생긴 현상이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지원해 주지 못하는 부모 세대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장성한 아들 둘을 둔 나는 더 걱정이 되었고, 청년들이 어떤 해답을 갖고는 있기는 할까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청년 세대가 말하는 ‘연애와 결혼에 맞는 형편’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신혼집으로 수억 원대의 아파트를 마련해야 하고, 결혼식 준비도 화려해야 한다는 것은 타인의 기준에 매몰되는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는 마법의 단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의 불편함을 상쇄하는 힘이 있다고 보는데 말이다. 연애도 결혼도 계산적으로 따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랑은 이제 돈 앞에서 무력해 보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컵라면 앞에서도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본다. 방해할 수 없는 애틋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나의 걱정이 너무 졸렬한 것 같다. 미디어에 비친 모습만을 보고 청년 세대의 낭만과 진심을 수준 낮게 평가한 것이다. 극단적인 것을 일반화해서 대중을 자극하는 것이 미디어의 흑심이다. 나도 모르게 물들어서 그들의 진심을 폄훼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청년 세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어른 세대가 문제 해결의 방향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질책하고 책임만 지우려 하고 있었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젊은이들 앞에서 말이다. 나는 어른이 아니고 꼰대였다.

두 사람은 남은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자리를 정리했다. 편의점을 나서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마주 잡은 두 손은 단단해 보였다. 사랑은 역시 사랑이다. 괜한 자격지심에 불퉁거린 못난 내가 부끄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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