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라니, 참 로맨틱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나라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 푸른 나라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연상시키는 낭만의 공간, 상상력의 공간이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리스라는 나라는 언제나 사유하는 학문적인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고 작은 도시국가였던 아테네가 국가의 모습을 이념적 사상에 의해 재건하면서 많은 인문학적 동경을 심어줬다.
그런 사랑 가득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나의 사랑, 그리스>는 한국어로 제목이 번역되고 흡사 러브엑츄얼리와 비슷한 포스터로 로맨틱 코미디일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을 확 깬 작품이다. 3가지의 에피소드가 한 그리스 가정의 이야기로 모아지면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전형적인 로맨스물로 담아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두 번째 기회에서 여러 번 언급됐듯이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어떤 다른 꾸밈이 필요 없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솔직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내전, 이민자, 파시즘, 정리해고, 경제 위기, 무지 등의 무거운 이야기들은 이성 간의 사랑을 넘는 더 진지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파리스와 다프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에피소드 '부메랑'은 이민자와 시민들 사이에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갈등을 문제 삼는다. 이민자들에게 상처를 받은 다프네의 아버지는 파시즘으로 변화되어 이민자에 대하 최소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다프네는 학교에서 정치에 대해 공부를 하지만 현시대에 과연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이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화살을 던져 부메랑처럼 자신의 가슴에 내리꽂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로세프트 50mg'은 우울증 치료제로 현대인들의 가장 큰 질병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가정의 가장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아내의 남편으로 살아가는 데에 지친 지오그로는 원나잇으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을 정리해고하기 위해 파견된 상사라는 걸 깨닫는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굉장히 냉철한 여자 엘리제는 자신이 가벼운 애정관계 때문에 흔들리는 걸 발견한 순간 그 자리를 떠나 본사로 돌아가고 지오그로의 동료는 실직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가정과 행복한 삶에 동경과 그 속내를 폭로했던 이 에피소드는 지오그로와 엘리제의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상 현대인들이 많이 겪고 있는 가정불화와 가족 간의 의사소통 단절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두 번째 기회'는 경제 위기에 놓인 한 주부 마리아가 세바스찬을 만나게 되면서 지식에 대한 도움과 삶의 낙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내내 줄곧 등장하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를 설명하며 진정한 사랑을 두 번째 기회에 비유하고 현실을 떠난 망상적인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다. 이 세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모국어를 사용해서 상대방 면전에 대고 욕설을 퍼붓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솔직한 말을 내뱉는 주인공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진심을 전달한다. 물론 그 말들이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되지는 못한다. 다양한 문화권에 살면서 거대담론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시각에서 보면 문화의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로 빗어진 문화권들의 의사소통 불가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통된 언어를 배우는 것도 아닌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며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3쌍의 커플들은 항상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우월적인 입장에 있다. 그러나 더 큰 아픔을 겪는 것은 우월적인 다프네, 엘리제, 세바스찬이다. 바로 이 세명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요구되고 사랑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공통점은 특정 종교의 의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리스인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를 믿는 것을 미루어보아 그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의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사랑을 넘어선 종교적 의미 또는 신을 향한 동경과 경외 등을 일반적으로 내포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다.
이 영화는 영원하지 못할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유한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로스와 프시케에서는 불멸의 존재로 거듭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고 더불어 가질 수 있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이성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신을 향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삶 자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사랑해야 하며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도 사랑해야 한다. 유한한 인간에게 최선이란 사랑인 것이다.
ps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시험핑계대고 일주일만에 글을 쓰려니.... 어떻게 느꼈는지도 가물가물합니다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