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짓말, 당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짓말, 당신이라면 무엇이든지 용서할 수 있다는 거짓말.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기에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이해하지도, 용서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서로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고, 또 그런 거짓말을 기대한다. 심지어 그게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짓말을 갈구할 때도 있다. 그건 우리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친구, 부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이해심 많은 웃음과 칭찬을 아끼지 않다가 어처구니없는 상화에 처하는 남녀를 그리는 영화다.
강원도 속초에서 나고 자란 네 명의 친구들은 석호(조진웅)의 집들이를 핑계 삼아 오랜만에 한 집에 모이게 된다. 최근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당한 한 명을 제외하고 모인 친구들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칭찬과 기분 좋은 근황들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서로의 비밀에 대한 묘한 기류가 흐르자 석호의 아내 예진(김지수)은 각자 이 식사자리에서 핸드폰 속 모든 내용을 공유하는 게임을 제안하고, 떨떠름한 친구들과 배우자들은 눈치를 보며 각자의 물건을 하나씩 내놓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숨겨왔던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오해가 쌓이기 시작한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게임을 제안한다면 당연히 거절하겠다. 비밀이 있지 않더라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영화 속 남녀가 이 게임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40년 지기 친구’라는 명목 때문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공부 잘하는 몇몇 친구들에게 은근히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준모(이서진)는 친구가 게이라는 말에 “내가 네가 게이인 거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한다. 친구라면 ‘너의 성적 취향쯤은 제일 먼저 알고 있어야지’라는 이 말은 오랜 친구라는 관계를 서로의 비밀쯤은 하나씩 공유하면서 ‘내가 남들보다는 너를 좀 알지’라는 뭔가 조금 우월한 배경을 만들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라는 이 사람들은 공유하는 무언가로부터 상대와의 친밀감을 계산하고 어느 편에서 어떤 말을 할지 무리 속에서 빠르게 결정한다.(주변에 이 게임을 제안하면 그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잘 생각해 보자.)
놀랍게도 이 게임을 제안한 사람은 사실상 비밀이 제일 큰 석호의 아내 예진(김지우)이다. 그녀는 준모와 바람을 피우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별 다른 걱정을 안 했을 법도 하고, 나도 바람을 피우는 데 내 남편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말에 첫 번째로 동의하는 사람은 준모의 아내 세경(송하윤)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은 애정관계가 좋은 편이나 준모의 성격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세경이 의심을 품기 시작한 듯 보인다. 나머지 친구들은 이미 영화 시작부터 부부 사이에 삐거덕하는 부분과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별 다른 반응이 없어 보인다.
이 파탄의 저녁식사자리에서는 강연을 다닐 정도로 지적인 정신과 의사 예진이 가슴 성형수술을 받는다는 것을 시작으로, 전업주부 수현(염정아)이 취미로 하는 문학수업에서 만난 친구에게 예진의 허세에 대해 험담을 한 것, 혼자 온 친구 영배(윤경호)를 빼고 셋이서 골프를 치러 가기로 한 것, 석호가 아내 몰래 다른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것, 영배가 게인인 것, 수현의 남편 태수(유해진)가 늦은 밤 여자 가슴사진을 받은 것, 수현이 태수 몰래 시어머니의 요양원을 알아본 것, 등이 밝혀진다.
그러니까 이 게임은 자신은 관계에 대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시작된 데서 모두가 죄인이라는 결론에 치닫게 된다. 잘못의 크기보다 더 배신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의심했던 관계가 사실로 드러날 때, 잘못이 아님에도 아픈 소리를 들었을 때다. 영배가 게인인 것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게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태수가 게이라고 오해받는 상황에서도 영배는 나서지 못하고 안절부절만 하고 있다. 결국 그의 자기 방어적 태도가 이후에 더 큰 공격성으로 진화되면서 친구라는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적어도 내게 가장 큰 에피소드는 태수와 수현의 관계이다. 처음에는 잘 나가는 변호사에게 잡혀 사는 전업주부인 줄 알았던 수현은 사실 1년 전에 차로 사람을 쳤지만 남편 태수의 거짓 자백으로 가정에 충실하는 속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죄책감과 미안함이 커져 태수의 모든 행동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그를 오해하기도(일부는 사실이지만) 감정을 표출해 그를 궁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의 태도를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그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예전에 자신이 사랑한 29살 태수의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그려 나가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 물론 그녀가 갈아입은 속옷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 거의 대부분 바람을 피웠거나 배우자에게 떳떳하지 못할 짓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귀여운 정도라고 해두겠다.
수현에 대한 태수의 마음이 전반부와 후반부에 확연히 차이 나면서 아리송하게 맺음을 짓지만, 화장실에서 혼자 않아 작은 휴대전화 화면을 확대해 본 것과 더불어 부부간의 애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태수와 수현의 침대 장면을 미루어 볼 때,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완벽히 타인이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자신이라고 가정할 수도 타인을 위해 자아를 부정할 수도 없다. 대표적인 관계가 바로 사랑인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을 버리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을 버리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상대를 위한 모든 일의 내막은 자신을 위한 일임이 분명하고 그것을 포장하는 건 상대를 위한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마음이다. 마지막 이 둘(수현과 태수)의 관계가 겉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그 내막은 그렇지 않다는 걸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찜찜한 거다. 결국 이 영화가 꼬집는 건 ‘네 옆에 사람을 봐봐. 믿을 수 있어?’가 아니라 ‘너 자신을 봐봐, 너도 그렇지 않아? 알면서도 모른척하잖아.’리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추악하지만 진실인 본성을 감추는 이 본능적인 모습을 월식에 비교하고 있고, 잠시 도심에서 벗어나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다 화려한 도시로 돌아가는 모습, 잠시 빨간 불이 켜져 멈춰있지만 이내 다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모습에 메시지를 담는다. 그러나 언제가 다시 신호등에 노란 불이 켜지고 또 빨간 불이 켜지면서 다시 멈출 걸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초록색 그 신호만 기다리면서 운전대를 놓지 못한다. 운전대를 놓고 차문을 열고 상대를 두고 차 밖으로 나가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누구나 아는 것이다. 근데 우리는 이걸 관계라는 보기 좋은 모래성으로 덮어두고서 일부로라도 진실을 꺼내보려 하지 않는다. 자꾸 모래를 들추다 보면 그 모래성은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 모래성은 상대의 손이 아니라 이타적 인척 하는 이기적인 반드시 내 손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어있다.